법원은 29일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의 핵심 쟁점인 ‘청와대 하명 수사 의혹’을 유죄로 인정하면서 “피고인들이 청와대 비서관 등 공권력 정점에 있는 지위를 악용하고 선거에 개입해 유권자 선택을 왜곡시키려 했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30년 지기인 송철호 전 울산시장을 당선시키기 위해 경찰 조직과 대통령 비서실 기능이 불법적으로 동원됐다는 점을 재판부가 인정한 것이다.
그동안 재판에선 청와대 범죄정보 이첩에서 경찰 수사로 이어지는 순차 공모의 실체 여부가 핵심 쟁점이었다. 검찰은 2017년 9월 송 전 시장이 당시 울산경찰청장이던 황운하 민주당 의원을 만나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당시 울산시장) 측근 수사를 논의했다고 봤다. 이후 송병기 전 울산시 경제부시장이 김 대표 측근 비위 정보를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에 제공했고,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이 해당 정보를 토대로 만들어진 첩보 보고서를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에게 전달해 경찰에 하달되게 했다는 내용이다.
핵심 증거는 송 전 시장 선거캠프 전신인 ‘공업탑기획위원회’ 일원인 윤장우 전 민주당 울산시당 정책위원장의 증언이었다. 윤씨는 법정에서 “송 전 시장이 황 의원을 만난 후 ‘얘기 잘됐다. 적극적으로 돕겠단다’고 했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전반적 취지를 볼 때 믿을 수 있는 증언”이라며 유죄 증거로 판단했다.
청와대의 첩보 보고서 작성·이첩 과정도 ‘정상 업무’에서 벗어났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재판부는 “선출된 지자체장에 대한 감찰이나 비위 정보 수집, 수사기관 이첩은 대통령 비서실 업무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했다. ‘인편’으로 전달된 이첩 방식도 문제삼았다. 재판부는 “현직 시장 비위 정보를 수집하고 정식 공문 절차가 아닌 인편으로 이첩하는 게 통상 업무라면 대통령 비서실에서 권력을 이용해 정치인이나 민간인을 사찰하고 수사 의뢰하고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인데 허용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백 전 민정비서관 등 청와대 인사들은 송 전 시장의 출마 여부를 몰랐기 때문에 선거에 영향을 미칠 의도가 없었다는 주장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당시 송 전 시장과 대통령의 관계 및 송 전 시장의 출마 예정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보인다”면서 “그렇지 않더라도 야당 소속 현직 시장에 대해 선거를 8개월 앞둔 시점에 수사가 시작되면 불리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짚었다.
다만 송 전 시장과 이진석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등이 공모해 산재모병원(김 대표 공약)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 탈락 발표 시기를 조정해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는 혐의는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예타 절차를 진행한 기획재정부 담당자들이 청와대로부터 발표 연기를 지시받았다는 아무런 증거도 제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법원은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이던 한병도 민주당 의원이 송 전 시장의 경선 경쟁자였던 임동호 전 민주당 최고위원의 사퇴를 종용했다는 혐의도 입증되지 않았다고 봤다. 재판부는 “한 의원이 임 전 최고위원에게 당시 (출마 만류) 전화를 했다는 객관적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주요 혐의 3건 중 2건에 무죄가 선고됐지만 핵심 혐의인 ‘하명 수사’ 의혹에 유죄가 선고되면서 문재인정부 청와대의 도덕성도 타격을 입었다. 공소장에 35번 등장하는 문 전 대통령의 사건 관여 여부를 밝혀내야 한다는 국민의힘 측 공세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