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골리앗 싸움’결국 역부족… 후발주자 한계 극복 못 해

입력 2023-11-29 04:08
한덕수 국무총리가 28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외곽 팔레 데 콩그레에서 열린 제173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2030년 세계박람회 개최지 선정 투표결과 부산이 탈락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형준 부산시장, 한 총리,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연합뉴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재계는 28일(현지시간)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지 결정 순간까지 ‘원팀’이 돼 총력전을 펼쳤지만 후발 주자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당초 부산은 최대 경쟁 상대이자 ‘오일머니’를 앞세운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보다 1년 늦게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이에 외교가와 재계 안팎에선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엑스포 부산 유치를 위해 민·관이 똘똘 뭉쳐 선보인 투혼은 실패의 아픔을 씻어낼 희망의 불씨를 남겼다는 평가다. 재계 관계자는 “국제 행사 유치를 위해 민·관이 합심해 전력을 다한 모범 사례로 기록될 것”이라고 28일 말했다.

정부는 마지막까지 엑스포 유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년6개월간 150개 이상의 국가 정상을 양자회담으로 만나며 지지를 호소했다. 윤 대통령은 미국 뉴욕에서 각국 정상을 만날 때에는 상대국의 기록요원에게도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다. 부산엑스포를 언급하지 못한 채 정상회담이 끝나려 하면 “한 말씀만 더”라며 상대방을 붙들었다. 엑스포 유치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은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해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오영주 외교부 차관도 마지막 한 표를 위해 교섭전을 벌였다.

BIE 투표가 임박하면서 대통령실과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혈전” “총성 없는 전쟁”이라는 말이 나왔다. 정부는 한국 지지가 비공식 수준에 머물거나 끝까지 고민한 국가를 대상으로 막판 교섭에 힘을 기울였다. 지난해 7월부터 509일 동안 민·관이 엑스포 유치를 위해 이동한 거리는 지구 495바퀴(1989만1579㎞)에 달한다.

삼성·현대·SK·LG·롯데 등 5대 그룹을 중심으로 산업계도 팔을 걷어붙였다. 엑스포 부산 유치 민간위원장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은 유럽 북미 선진국은 물론 남태평양 섬나라까지 가리지 않고 발 도장을 찍었다. 재계 관계자는 “북한 빼고 다 돌았다는 말이 가장 적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인사들의 동선을 사우디 측이 뒤따르며 지지 철회를 유도하는 ‘회유 전략’을 쓰는 일까지 벌어졌고, 한국도 비공개 물밑 접촉으로 전술을 바꾸는 등 치열한 눈치싸움이 전개됐다.

기업들도 역량을 총동원했다. 삼성전자는 영국 런던 피카딜리 광장, 스페인 마드리드 까야오 광장 등 세계인이 모이는 관광 명소에서 부산엑스포 홍보 영상을 30만회 넘게 선보였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지난 3월 BIE 실사단의 방한에 맞춰 선보인 영상 2편은 누적 조회수 1억회를 돌파했다. SK그룹은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50명을 글로벌 유치전에 투입했다. LG그룹은 부산엑스포 홍보를 위해 파리 시내버스만 2030대를 동원했다. 부산에 기반을 둔 롯데그룹은 신 회장이 직접 ‘부산 엑스포 전도사’를 자처하며 주한 대사 30여명을 직접 만나 지지를 요청했다.

양민철 이용상 기자, 세종=이의재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