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오너가(家) ‘MZ세대’ 자제들이 속속 경영 일선에 나서고 있다.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 스스로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이들은 신사업 등 신성장 동력 찾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일부 그룹의 30~40대 장남들은 최근 대표이사를 맡으며 회사를 직접 이끌고 있다. 코오롱그룹은 28일 이규호 코오롱모빌리티그룹 사장을 ㈜코오롱 전략부문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내정한다고 밝혔다. 1984년생인 이 사장은 이웅렬 코오롱 명예회장의 장남이자 코오롱가 4세로 지난해 말 사장으로 승진한 지 1년 만에 부회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코오롱그룹은 “불확실한 경영환경을 고려해 안정 속에서도 미래가치 성장을 지향하기 위한 인사”라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80년대생 첫째 아들’ 최고경영자(CEO)로는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과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이 있다. 1983년생인 김 부회장은 한화솔루션 대표이사를 맡으며 그룹의 실질적인 오너 역할을 하고 있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장남인 정 부회장(1982년생)도 사장 승진 2년여 만인 이달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대표이사이자 오너가의 장남으로 승계를 준비 중이다. 정 부회장은 최대주주인 정 이사장과 국민연금에 이어 HD현대 지분을 5.26% 보유한 3대 주주기도 하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1986년생)는 연말 인사에서 그룹 핵심인 유통 쪽으로 보폭을 넓힐 것으로 보인다. 신 상무가 내년에는 경영에 더 깊숙이 관여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LS가 3세이자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의 장남인 구동휘 LS일렉트릭 부사장(1982년생) 역시 LS MnM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다. 그룹의 신사업인 2차전지 소재 사업을 구 부사장이 직접 이끌도록 하기 위한 ‘전진 배치’라는 평가다.
대표이사 급은 아니지만 1990년대생 오너가 자제들도 그룹 내에서 입지 다져나가고 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남인 이선호 CJ제일제당 경영리더(임원)는 식품성장추진실장을 맡아 그룹의 미래를 그리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 실장은 1990년생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자녀들도 핵심 계열사에서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장녀 최윤정(1989년생)씨는 SK바이오팜 전략투자팀장으로 근무 중이고 장남 최인근씨(1995년생)는 SK E&S 입사한 뒤 북미법인 패스키로 옮겨 일하고 있다.
두산그룹에선 5세들이 서서히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의 장남 박상수씨(1994년생)는 지난 9월 ㈜두산 지주 부문 CSO 신사업전략팀에 입사했다. 직급은 수석으로 신사업 발굴 업무를 담당한다. 박지원 두산그룹 부회장 겸 두산에너빌리티 회장의 장남 박상우씨(1994년생)도 두산퓨얼셀 미국법인 하이엑시엄에 재직 중이다.
오너 일가의 특권인 초고속 승진으로 CEO 자리에 오른 이들은 성공한 아버지만큼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 있다. 최근 글로벌 경기 불황으로 자신만의 색깔을 담은 신사업을 펼치기엔 상황도 좋지 못하다. 재계 관계자는 “국민들 입장에선 이름도 낯선 이들은 아직까진 재벌가 자제일 뿐 성공한 경영자로 평가받지는 못하고 있지 않나”라며 “시험대에 선 이들 중 과연 얼마나 아버지의 명성을 뛰어넘을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민영 기자 m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