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사랑 주신 예수님처럼 우리 사회 고통과 아픔 품어줄 내 안에 ‘틈’ 있는지 돌아보길”

입력 2023-11-29 03:03
정상신 밀라노 예품교회 목사가 28일 서울 용산구 한국마크로비학교에서 진행된 ‘아가서 정원Ⅱ’ 전시회에서 작품에 담긴 의미를 소개하고 있다.

1년 전 핼러윈 참사의 아픔을 위로하며 희망을 전했던 ‘아가서 정원’ 전시회의 두 번째 이야기가 같은 자리에 찾아왔다. 지난 21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용산구 한국마크로비학교에서 진행된 ‘아가서 정원Ⅱ’ 전시회엔 이탈리아의 전시기획자 파비오 마치에리, 라우라 톤디를 비롯해 국내의 이나경 박동화 이경성 등 10명의 작가들이 15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올해도 전시회 개최를 위해 고국을 찾은 정상신 밀라노 예품교회 목사는 “시인 윤동주가 잎새에 이는 바람에 괴로워하며, 별 하나에 추억과 사랑을 부를 수 있었던 것도, 단테가 죽기 직전 남긴 문장에 정원을 스케치한 것도 일상을 심도 있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쪽 벽면에 크고 작은 나무 조각을 가로세로로 덧대어 만든 작품으로 걸음을 옮기자 ‘틈’(주건우 작가)이란 이름의 제목이 눈에 띄었다. 정 목사는 “치열한 경쟁 시대에 살다 자유의 틈을 찾아 이태원을 찾았던 이들이 틈이 없어 숨을 거둬야 했던 아픔이 이 마을에 있다”며 “몸의 틈을 열어 십자가 사랑을 주셨던 예수님처럼 우리 사회에 고통과 아픔을 품어 줄 ‘틈’이 있는지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주건우 작가의 작품 '틈', 박동화 작가의 작품 '도성 영가'(왼쪽부터).

이번 전시회 주제는 ‘마을, 우리 정원이 되다’이다. 농장 생활과 개울, 언덕과 강아지 등 일상 속 동네 모습을 다양한 색감으로 표현한 ‘꿈꾸는 우리 동네’(김현기 작가), 한센인 정착촌인 여수 도성마을의 자화상을 버려진 건물과 스스로 피어난 화초, 넝쿨 식물에 상징적으로 묘사한 ‘도성 영가’(박동화 작가) 등 건강한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 필요한 마을 요소를 담아낸 작품들이 전시장을 채웠다.

이탈리아에서 기독교미술사, 교회예술사를 공부한 정 목사는 토스카나의 소도시 시에나에서 15년을 살며 경험한 지역공동체와 그 안에서의 교회 역할을 고찰해 왔다. “시에나는 콘트라다로 불리는 17개 지역으로 이뤄져 있어요. 모든 콘트라다에는 교회들이 있는데 신앙이 있든 없든 사람들은 교회를 ‘집’ 또는 ‘어머니’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모이고 이야기하고 식사하고 축제하는 동안 교회가 공동체의 중심이 돼주지요.”

정원은 ‘잘 가꾸어 놓음’이란 요소가 자신 또는 소수의 유익에 머물지 않고 더 많은 이들에게 향유될 때 가치가 극대화된다. 정 목사는 “아름다운 마음과 세계관이 엮인 ‘교회’라는 정원에 더 많은 이들이 찾아오고 공감하게 된다면 그 마을과 사회 구성원의 기쁨 슬픔 외로움을 품어 안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씨를 뿌린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어떤 열매가 맺힐지 알 수 없지만 멈추지 않고 시간과 정성을 들여 밭을 가꾸면 분명 의미 있는 열매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교회가 이 같은 시도를 끊임없이 해나가기를 응원한다”고 덧붙였다.

글·사진=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