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선택하는 삶

입력 2023-11-29 04:07

오랫동안 둥지가 되어준 작업실을 옮기며 인생의 난제를 만난 것처럼 판단이 어려웠다. 자연과 가까운 곳으로 가겠다는 숙원을 이루고 싶어 짬 날 때마다 근교로 나섰다. 한정된 예산 내에서 최대 효율을 내는 방법이 무엇인지 여러 선택지를 두고 따지니 나무를 깎는 공간이라는 작업실 본래의 순수성을 잃어갔다. ‘맞는 선택일까’ 자문했지만 쉽사리 답하지 못했다. ‘원하는 선택인가’를 다시 물었다. 시간에 쫓기면서도 먼지 입자 같은 잡념들이 부유를 그치고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욕망의 살점처럼 들러붙은 선택지들은 과감하게 지워냈다. ‘작업만 할 수 있으면 돼.’ 간결하게 남은 진심만이 선택의 길잡이가 돼 주었다. 본질은 선명해지고 욕망의 억압으로부터 나는 해방됐다. 이번 일을 한 줄로 요약했다. 선택의 무게는 욕망의 크기와 비례한다.

‘인생은 탄생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이다. 인간은 태어나 죽는 순간까지 선택을 연속하며 이러한 선택의 총합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건 생의 주체성과 자유의지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갓 1세가 된 인간은 돌잡이를 하며 선택하는 생의 시작을 축하받는다. 사소하게는 점심 메뉴부터 인생을 바꿀 만한 기로에서까지 삶은 매순간 선택을 종용한다. 우리는 기대와 두려움을 동시에 품은 채 선택의 날을 맞는다. 필시 전보다 나은 선택이기를 원한다. 선택의 책임 또한 본인에게 있다. 선택의 특징은 정답이 없으며 책임이 따른다는 점이다. 이 점은 위안이 되기도 폭력이 되기도 한다. 선택 자체가 삶이기에 선택에 길들여 있으면서도 선택이 어려운 이유다.

삶의 풍경이 바뀌는 선택을 했다. 그 결과 새 둥지를 만들었고 이전과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하지만 바뀌지 않는 것도 있다. 지난 6년처럼 나의 숙원을 위해 부단히 나무를 만지며 날갯짓을 할 것이다. 선택이 가진 힘과 무게를 실감하는 하루다.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