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에 따라 탈원전과 친원전을 오가는 전력계획이 오히려 에너지안보를 위태롭게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가 올해 안에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초안을 공개할 예정인 가운데 에너지업계와 학계는 ‘전원(電源) 믹스’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7일 정부와 에너지업계 등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다음 달 안에 11차 전기본 초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전기본은 전력수급 안정을 위해 정부가 2년마다 수립하는 향후 15년간의 장기 전원 계획이다. 지난 7월부터 전력 분야 전문가와 관계기관, 정부가 참여하는 ‘11차 전기본 수립 총괄위원회’가 출범해 초안을 마련하고 있다.
문제는 전기본 수립 방향이 지나치게 원전에 치우쳐있다는 점이다. 신재생 비중을 늘린다는 기본 계획은 바꾸지 않았으나 속도 조절에 들어갔고 전 정부에서 2020년 발표한 9차 전기본에서 2034년까지 10%로 줄이기로 했던 원전은 불과 2년 만인 지난해 180도 바뀌어 2036년까지 34.6%로 대폭 늘리기로 했다. 아직 초안이 나오지 않았는데도 ‘신규 원전을 건설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에너지업계는 정권에 따라 에너지 정책이 바뀌면서 정작 전원별 적절한 ‘에너지 믹스’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그동안의 전기본은 원자력, 신재생, 석탄, 액화천연가스(LNG) 등 전원 비중이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에너지 정책이 바뀌면서 에너지안보가 위협받고 있다”고 우려했다. 전원은 발전을 통해 전기에너지를 얻는 원천을 말한다. 학계에서도 우려를 표했다.
이날 전력산업연구회가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개최한 ‘합리적 전원 구성을 위한 전력수급기본계획 방향’ 세미나에서 정연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11차 전기본에서도 원전과 재생에너지 등 경직성 전원을 지속적으로 늘리는 방향이 논의되고 있다”며 “전력 불안정성이 심화해 전력수요 변동성에 대한 대응력이 낮아질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10차 전기본에 따르면 2036년 원전과 신재생에너지 등 ‘경직성 전원’ 비중이 65.2%로 높아지고 LNG 등 ‘유연성 전원’은 줄어들게 된다. 경직성 전원은 24시간 가동해야 하는 신재생, 원전처럼 임의로 공급량을 조절하기 어려운 전원을 말한다. 유연성 전원은 출력조정이나 ‘켰다가 끄는 것’이 상대적으로 쉬운 전원을 뜻한다. 석탄과 LNG가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날 세미나에서 정부가 주도해 설비계획 등을 확정하는 것에서 벗어나 중장기 전력수요를 전망하는 쪽으로 전기본을 개편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정부개입 최소화도 주문했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20년 동안 10차례에 걸쳐 전력수급을 계획했지만, 정책적 의지라는 이름으로 무리하게 계획을 세우는 시대는 지났다”며 “선진국은 정부가 수급계획을 만들지 않고 에너지 전문성을 가진 독립기관을 통해 아웃룩(전망)을 발표하고 에너지 시장에서 각 주체가 스스로 판단해 투자하고 경쟁하는 과정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조성진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기본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면서 장기 자원 적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대안으로 용량시장 제도의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면서 “정치 논리와 정부개입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민영 기자 m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