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발표될 약 2조원 규모의 은행권 상생금융 ‘시즌2’의 지원 대상과 방식에 대해 우려가 일고 있다. 자영업자·소상공인이 아닌 최저신용 일반 서민이나 신용도가 낮아 제1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지 못한 자영업자·소상공인은 지원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어서다. 은행권에 대한 과도한 상생금융 요구가 주주 이익 침해와 배임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는 시각도 여전하다.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27일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에서 17곳 은행장들과 간담회를 열고 “지난주 금융지주사 간담회에서 논의된 상생금융 방안과 관련해 조속히 합리적인 방안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은행권 공동 상생금융 지원 방안은 다음 달 은행연합회를 통해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금융 당국은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소상공인에게 직접 금리 부담을 최대한 완화해줄 방안을 마련하라며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구체적 지원 방식은 기존 지원안을 확대 발전시킬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취약 차주에게 금리를 직접 깎아주거나 받는 이자의 일부를 캐시백 형태로 돌려주는 식이다. 총 지원 규모는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횡재세’(초과이윤세) 법안에서 제시하는 올해 예상 환수액(1조9000억원)이 기준선이 되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제2금융권 차주 ‘역차별’ 논란
상생금융과 관련해 가장 먼저 제기되는 우려는 고신용 자영업자·소상공인에게 혜택이 집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고금리로 고통받고 있는 자영업자 상당수는 저축은행이나 상호금융에서 대출을 받았다.
이들은 대출금리부터 제1금융권에서 돈을 빌린 사람들과 최대 2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지난 9월 기준 5대 시중은행의 자영업자 신용대출 금리는 연 5%대 수준이지만 저축은행은 담보대출 기준으로 최저 연 7%대, 신용대출 기준으론 연 10%를 넘겼다.
지난 6월 기준 전체 자영업자 대출 잔액(634조9614억원) 중 은행(446조1645억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70% 이상이지만 상호금융(146조3847억원, 23.1%)과 저축은행(22조1412억원, 3.5%)의 비중도 작지 않다.
금융 당국도 이러한 지적을 의식한 듯 이날 은행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제2금융권을 이용하는 자영업자·소상공인의 금리 부담을 낮출 수 있도록 저금리 대환 프로그램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연 7% 이상 고금리 대출을 연 5.5% 이하 저금리 대출 상품으로 갈아탈 수 있도록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8월 31일부터 사업자 대출에서 사업 용도로 받은 신용대출까지 대상 범위를 넓혔지만 이자 경감 혜택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됐었다.
저금리 대환 프로그램 확대 외에 제2금융권 차주에 대한 직접적 금리 완화 부담이 추가로 담길지는 지켜봐야 한다. 은행보다 경영 여건이 어려운 제2금융권에게 상생금융 방안을 내놓으라고 압박하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제2금융권의 고금리를 쓰고 있는 자영업자·소상공인 부담 완화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 중이며 필요하면 은행권 지원 방안과 함께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원 대상이 자영업자·소상공인 등 특정 계층에 한정되는 것도 뒷말을 낳을 수 있다. 자영업자·소상공인에게만 특혜를 준다는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정부는 새출발기금을 통해 자영업자 채무를 최대 90% 탕감하고 청년층에게는 이자를 깎아주기로 해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휩싸였다. 연체 없이 원금과 이자를 갚고 있는 일반 성실 상환 차주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다만 금융 당국은 코로나19에 이어 고물가·고금리로 오랫동안 피해를 본 자영업자·소상공인이 가장 먼저 신경써야 할 취약계층이며 일반 취약차주의 경우 기존 서민금융 지원 프로그램으로 충분히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무조건 ‘이자 감면’ 탈 날 수도
은행권은 직접 이자를 대폭 감면해주는 조치가 배임 논란으로 번지지 않을지 걱정하는 눈치다. 상생금융 기여금이 늘어나면 그에 따르는 이익 감소로 배당 여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해외 기업설명회(IR)를 준비 중인 금융회사들은 이미 상생금융 ‘리스크’ 대비에 들어갔다. 외국인투자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서다. 4대 금융그룹(KB·신한·하나·우리금융)의 외국인 지분율은 60~70%다. 금융 당국과 정치권의 상생금융 요구가 이번 한 번으로 그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높은 이자 이익을 거둘 때마다 상생금융 요구를 받는다면 그 자체만으로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금융 당국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복현 원장은 앞서 “자영업자·소상공인의 현황을 무너뜨리지 않고 유지한다는 건 은행에도 중장기적으로 보면 이익이 되는 측면이 있다”며 “배임 등 법률적 이슈도 잘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 당국 관계자도 “각 은행에서 출연금을 걷어 차주들 이자를 감면해주는 방식은 배임 소지가 있을 수 있어 은행들이 각자 고객에게 부담을 감면해주도록 한 것”이라고 말했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