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도 뉴트로 바람… 문학의 밤이 돌아왔다

입력 2023-11-28 03:02
1980~90년대 한국교회를 풍미했던 문학의 밤이 다시 돌아왔다. 알파·Z세대 등 이른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 사이에서 일고 있는 ‘뉴트로(New+레트로·새로운 복고) 열풍’과 더불어 교회 공동체 유대감 증진을 위한 유용한 도구로도 주목받는 분위기다.

수원종로교회 교인들이 지난 5일 ‘추억의 문학의 밤’ 행사에서 우쿨렐레를 연주하고 있다. 수원종로교회 제공

경기도 수원 팔달구의 수원종로교회(강성률 목사)는 지난 5일 ‘추억의 문학의 밤’ 행사를 열었다. 무대 위에 선 이들은 대부분 중장년층 성도였다. 과거 청소년 중심의 문학의 밤 행사와 달랐지만 출연자들은 춤과 노래, 악기 연주를 통해 끼를 뽐내고 하나님을 찬양했다.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에는 ‘아 옛날이여’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문구처럼 문학의 밤은 과거 한국교회가 문화의 중추 역할을 하던 영광의 시대를 추억하게 하는 ‘라떼’의 상징과도 같다.

최근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문학의 밤은 ‘뉴트로 열풍’을 빼놓고 설명하기 힘들다. 알파·Z세대에게 90년대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신세계다. ‘90년대 서울 사투리’를 재현한 코미디 쇼 SNL코리아의 영상에 열광하고, 가수 이문세의 노래를 찾아 듣는 10대들이 많다. 한물간 중고 캠코더를 사는가 하면 배우 한소희가 폴더폰을 쓴다는 소식에 폭발적인 반응을 보인다.

인천 미추홀구 학익감리교회가 지난 19일 개최한 문학의 밤 공연에서 청소년부 학생들이 뮤지컬 공연을 선보이는 모습. 학익감리교회 제공

지난 19일 인천 미추홀구 학익감리교회(백성현 목사)에서 열린 문학의 밤도 뉴트로 열풍의 단면을 드러냈다. 15년간 중단됐던 문학의 밤이 부활한 건 지난해였다. 코로나19로 별다른 교회 내 모임을 하지 못했던 아이들에게 유대감을 길러주기 위한 목적으로 마련된 행사였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아날로그 감성이 담긴 문학의 밤이 요즘 청소년들에겐 신선한 문화였던 것이다. 정영학 학익감리교회 청소년부 목사는 27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교회 안에서 자란 아이들조차 문학의 밤을 처음 준비하다 보니 신선하고 좋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고 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행사에 공을 더 들였다. 4개월 전부터 정성껏 무대를 준비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종사하는 청소년부 교사가 가세해 공연의 완성도를 한층 끌어올렸다. 문학의 밤을 위해 이른바 ‘아이돌식 교습’까지 진행됐다. 정 목사는 또 “요즘 친구들은 문화적 눈높이 수준이 높다”면서 “과거 문학의 밤 같은 장르의 공연이라도 전문적인 교육을 통해 수준을 끌어올린 점은 아이들이 자신 있게 친구들을 초청할 수 있는 원천이 됐다”고 말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문학의 밤은 ‘힙한 문화’로 통했다. 깊어가는 가을부터 겨울 초입까지 청소년들이 연극과 찬양 콩트 등 다양한 공연을 준비해 교회 밖 청소년을 교회로 초청했다. 사람들이 몰렸고, 문학의 밤을 통해 전도가 이뤄졌다. 무대를 준비한 교회 청소년들에게는 끼를 발견하는 장이었다. 한국의 연극·뮤지컬 배우 상당수가 ‘문학의 밤 출신’이라는 말도 나돌 정도였다.

예장통합 총회 문화법인 사무총장 손은희 목사는 “놀 거리가 없던 시대, 교회의 문화 행사는 지역의 잔치처럼 여겨졌다”며 “1990년대 후반으로 오면서 문화에 대한 사회의 투자가 확대됐지만 교회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문화적 리더십을 많이 상실했다”고 분석했다.

뉴트로 열풍은 과거의 교회 문화를 새롭게 조명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윤영훈 성결대 문화선교학과 교수는 “레트로가 전에 알던 것을 회상하는 거라면 뉴트로는 경험 못 한 사람이 새롭게 느끼는 신선함”이라며 “새벽송이나 크리스마스이브 올나잇 등 교회가 잃어버린 문화를 다시 꺼내 새롭게 발전시킨다면 교회 내 유대감 증대와 복음 전파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