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장·1차장 고질적 갈등… 尹, 동시 경질 ‘기강잡기’

입력 2023-11-27 04:06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김규현 국가정보원장을 포함해 권춘택 1차장과 김수현 2차장 등 국정원 수뇌부를 26일 전격 교체한 것은 인사 문제와 관련한 국정원 내부 혼선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 윤 대통령은 인사 문제와 관련해 갈등설을 노출했던 김 원장과 권 1차장을 동시에 교체하면서 흐트러진 국정원 기강잡기에도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김 원장 교체설은 윤 대통령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앞둔 이달 초부터 거론되기 시작했다. 지난 6월 국정원 인사파동 중심에 있었던 전 대공방첩센터장 A씨가 또다시 국정원 내 인사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고, 김 원장이 이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이 같은 내용의 언론보도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대통령실은 김 원장 교체설을 계속 부인했지만, 윤 대통령이 영국·프랑스 순방에서 귀국하자마자 전격적으로 김 원장을 포함한 국정부 수뇌부를 교체하면서 사실상 문책성 경질 인사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국정원 내 인사 잡음은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내내 반복돼 왔다. 지난해 9월 국정원은 1급 보직국장 27명을 무더기 면직 처리했는데, 이를 두고 국정원 내부에서는 ‘조직 쇄신’을 위한 조치라는 입장과 지나친 ‘전 정부 지우기’라는 반발이 대립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지난 6월에도 김 원장의 측근인 A씨의 인사전횡을 이유로 윤 대통령이 재가까지 마친 1급 간부 인사를 번복하는 초유의 사태를 겪기도 했다. 인사 관련 잡음이 불거질 때마다 김 원장과 권 차장 사이의 ‘알력설’이 빠지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재신임 형태로 김 원장에게 힘을 실어줬지만,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수뇌부 전원 교체라는 극약처방을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후임자가 정해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국정원장 공백이라는 부담까지 감수하며 김 원장의 사표를 수리한 점은 윤 대통령이 현 사태를 얼마나 엄중하게 보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대목이라는 지적도 있다.

해이해진 국정원의 기강을 바로 잡겠다는 윤 대통령의 의중이 이번 인사로 반영됐다는 설명도 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내부에서는 인사를 두고 치고받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런 내부 사정이 언론 등을 통해 외부로 유출된다는 것 자체가 최고 정보기관이라는 국정원의 기강이 얼마나 흐트러져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김 원장 후임을 물색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대통령실은 최근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한 북한이 핵실험에 나설 가능성도 점증하는 상황에서 국정원장 자리를 오래 비워둘 수 없는 만큼, 최대한 빨리 후임 인선을 발표할 방침이다. 차기 국정원장 후보로는 김용현 경호처장이 가장 유력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등도 후임 후보군에 올라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