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조명환 (16) 가난한 나라의 후원 아동에서 월드비전 회장으로…

입력 2023-11-28 03:09
조명환 회장이 2021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월드비전 회장 취임식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월드비전 제공

2020년 국제구호 NGO 월드비전에서 차기 회장을 선임 중인데 지원을 해보라는 연락을 받았다. 후원 아동으로 자랐고 에드나 어머니의 큰 사랑을 기억하기에 아이들을 도우며 살고 싶다는 마음은 늘 있었지만 구체적인 고민을 해 본 적은 없었던 터라 이 제안에 큰 관심이 쏠리지 않았다. 게다가 은퇴 이후 미국에서의 생활도 순조롭게 준비되고 있는 마당에 뜬금없이 NGO 회장이라니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여겼다.

너무 좋은 일이지만 지금은 때가 아닌 듯하다고 정중하게 거절을 표하고 반년이 훌쩍 흘렀다. 여름을 코앞에 둔 6월, 잊고 있던 월드비전 회장 지원과 관련해 다시 연락이 왔다. 마침 방학이 시작돼 시간적 여유도 있었고 무엇보다 내 일은 아니라 생각했던 지난번과는 달리 ‘하나님의 뜻인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순종해 월드비전 회장 선임을 위한 인터뷰에 응했다.

내가 계획했던 미국행은 내려놓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긴 채 따르다 보니 어느새 나는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월드비전 회장으로 선임되었고 2021년 1월 취임을 하게 됐다. 나는 월드비전 회장으로 뽑히고 나서야 하나님이 이 사명을 맡기시려고 지금까지 나의 삶을 운영하셨음을 깨달았다. 돌아가시는 그 날까지 45년 동안 빠짐없이 매달 편지와 후원금을 보내온 에드나 어머니의 사랑도 온전히 이해됐다.

에드나 어머니가 보내오는 후원금과 편지 때문에 나는 후원자의 큰 사랑 속에 성장했음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하나님은 에드나 어머니를 통해 나에게 후원의 소중함과 전 세계 아이들을 향한 소망을 간직하게 하셨고 월드비전 회장이 갖춰야 하는 마음가짐을 준비시키셨다.

월드비전 회장이 된 후 다양한 후원자와 기업 등을 만나 후원 유치에 힘써야 할 때도 이 일을 위해 주님이 얼마나 나를 철저히 훈련시키셨는지 깨닫게 됐다. 20년 동안 아시아·태평양 에이즈학회 회장으로 내가 한 일은 에이즈 치료약을 사기 힘든 아프리카 지역 환자들을 위해 후원금을 모으는 일이었다. 이들을 위해 백방으로 뛰며 세계 유수의 기업 총수들을 만나 에이즈 치료약이 어려운 이들에게 흘러갈 수 있도록 후원금 모으는 일에 총력을 다했었다. 에이즈 치료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 앞에 서고 인터뷰를 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경험은 월드비전 회장으로 자연스럽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월드비전이 한국교회와 협력해야 할 때도 주님의 섬세한 이끄심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환갑이 다 되어 후원 아동이었다는 사실을 밝힌 후 주님은 5년여 동안 수많은 크고 작은 교회에서 간증 사역자로 나를 사용하셨다. 많은 목사님과 성도님들을 만날 수 있었던 그 시간은 월드비전이 한국교회와 함께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됐다.

주님은 가난하고 소외된 아동을 돕는 일에 나를 사용하시려고 내 인생을 관통하며 일하셨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때로 고통 앞에 절망하고 눈물도 흘렸으나 결국 주님은 주님의 일을 하셨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잠 16:9)이심을 찬양하며 감사드린다.

정리=박용미 기자 m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