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앱 통해 꾸준한 케어서비스
대구서 연계 관리 효과 확인
보건소 → 병·의원 ‘거꾸로’ 연계도
아직은 드물어… 신뢰 회복이 우선
대구서 연계 관리 효과 확인
보건소 → 병·의원 ‘거꾸로’ 연계도
아직은 드물어… 신뢰 회복이 우선
2년 전 고혈압 진단을 받은 직장인 박모(33·대구 북구)씨는 평소 다니던 A내과의원과 보건소에서 함께 혈압 및 건강생활 관리를 받고 있다. 한두 달에 한 번씩 혈압약을 타러 방문하는 해당 의원은 보건복지부의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제(일명 일만제)’ 시범기관으로 지정된 곳이다. 일만제는 동네 병·의원을 이용하는 고혈압·당뇨 환자가 원할 경우 의사와 케어코디네이터(간호사·영양사)의 모니터링, 점검·평가 등의 관리 서비스를 1년 단위로 받는 체계다. 이를 통해 동네 병·의원 중심의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만성질환 관리가 가능토록 하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박씨는 올해 6월 해당 의원의 일만제에 등록했고 이어 7월에는 의원의 권유로 인근 북구 보건소의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만성질환 관리 실증 연구’에도 참여하게 됐다. 스마트폰 앱을 활용해 비대면으로 영양·운동 등 건강생활 실천 서비스를 지원받는다.
박씨는 원장의 적극적 소개로 의원에서 직접 보건소에 신청서를 보내 줬다고 한다. 박씨는 “약 타러 가도 운동이나 식생활 관련 내용을 충분히 상담받진 못하고 혼자 실천하는 것도 쉽지 않다. 직장을 다니다 보니 식단 관리가 제일 어려웠다”고 했다. 하지만 보건소의 모바일 헬스케어서비스를 통해 매일 혈압을 측정하고 하루 6000~7000보씩 걷기, 세 끼 식사에 대한 영양 상담을 받으면서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혈압은 정상치를 유지 중이다. 박씨는 “스마트폰 앱에 연계된 누적 혈압 수치를 의원에 갈 때 보여주면 의사 선생님이 코멘트를 해 준다”고 했다.
박씨 사례는 이번 전국 9개 보건소 대상 ‘ICT 기반 만성질환 관리 실증 연구’에서 얻어낸 또 하나의 값진 수확이다. 환자 맞춤형 만성질환 관리를 위해 민간과 공공이 협업한 모범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영숙 대구 북구 보건소장은 “일만제 참여 의료기관에서 보건소로 환자를 직접 연계해 준 건 전국 처음”이라고 했다.
2019년부터 시행돼 온 일만제 시범사업(올해 4월 기준 109개 시·군·구에서 병·의원 3684곳, 고혈압·당뇨 환자 59만명 참여 중)에서도 병·의원과 보건소 간 환자 연계를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으나 지금까지 연계 사례는 거의 없다. 병·의원들 사이엔 보건소의 서비스 질에 대한 불신과 환자를 뺏긴다는 우려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보건소로서도 그간 체계화된 만성질환관리 서비스가 부재했고 대면 사업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중단되는 등 여건이 마뜩잖았던 측면이 크다. 환자들은 보건소 방문을 번거로워한다.
이런 상황에서 모바일 헬스케어 플랫폼을 통해 1차 의료기관과 보건소 간 환자 관리의 연계 가능성이 확인된 것이다. 대구 북구 보건소에 환자를 보내준 A내과 원장은 “고혈압·당뇨 환자 110여명을 일만제로 관리하고 있는데, 사실 돌봄 코디네이터로 간호사를 고용하기는 어려운 여건이라 원장인 내가 1인 다역을 하고 있다”면서 “그렇다 보니 진료와 약 처방 외에 환자들이 일상에서 신경 써야 할 건강생활 실천 상담이나 교육 시간은 충분히 갖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처럼 1차 의료기관이 커버하기 어려운 것들을 보건소가 해 주면 서로 ‘윈 윈’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특히 운동이나 식이, 금연·금주 등 생활습관 관리는 고혈압·당뇨 환자의 합병증 예방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A원장은 “보건소의 만성질환자 관리는 진료가 아닌, 건강위험 요인 감소나 건강행태 개선 같은 건강관리 서비스를 하는 것이므로 환자를 뺏긴다는 생각은 안 한다”고 덧붙였다.
거꾸로 보건소에서 병·의원으로 환자를 연계한 사례도 있다. 대구 북구 보건소는 지난 5월부터 모바일 헬스케어를 받아온 고혈압 환자 이모(65)씨가 일만제 참여 의원에 다닌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해당 의원에 체계적인 관리를 주문했다.
고혈압군 46명, 복합질환 4명 등 50명의 만성질환자에게 모바일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대구 수성구 보건소도 2명의 대상자를 인근 알파연합내과의원에 연계하고 관리를 요청했다. 이들 2명은 자신이 다니던 곳이 일만제 참여 의원임을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알파연합내과의원 이수기 원장은 “환자들이 드문드문 약 타러 오는 데다 전화나 문자 메시지 등으로 피드백을 주고 받지만 잘 되진 않는 편”이라면서 “환자들이 보건소 모바일 헬스케어를 받고 싶어하면 적극 권할 생각”이라고 했다.
노희숙 수성구 고산건강생활지원센터장은 “주민 스스로 건강 실천을 지속하는 것이 어려운 부분과 동네 의원에서 모든 케어를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생활습관 개선)을 보건소 모바일 앱을 통해 지원하는 방향으로 일만제 사업이 확대되면 새로운 모델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민간과 공공의 연계 활성화를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양쪽의 신뢰 회복이다. 건강증진개발원에 따르면 이번 실증 연구 참여자 중 보건소 진료 환자는 전체의 8%로 매우 적다. 보건소에 환자를 뺏긴다는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최근엔 보건소 서비스의 질 또한 과거와 달리 높아지는 추세다. 이영숙 대구 북구 보건소장은 “초창기에 일만제 참여 의원 원장, 지역 의사회와 협조 요청 간담회를 갖고 적극적으로 다가가려 했다. 소통 노력이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또 “일만제 참여 의료기관과 보건소의 통합 시스템 구축을 통한 정보 공유도 고민해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구=글·사진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