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트다운이 끝나자 초대형 액화천연가스(LPG) 버너에서 거센 불길이 치솟았다. 800~900도의 화염이 그 위에 있던 전기차용 배터리를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60초간의 ‘화염식’을 거친 배터리는 겉이 살짝 그을려 있었다. 문보현 자동차안전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현장에선 이걸 ‘배터리 불지옥 테스트’라고 한다”고 했다.
지난 23일 자동차안전연구원의 ‘친환경 자동차·부품 인증센터’에서 진행한 배터리 화재 실험 장면이다. 인증센터는 자동차 패러다임 변화로 조만간 대세가 될 친환경차의 안전성을 시험하고 평가하는 역할을 한다.
이날 테스트는 약식으로 진행했지만 실제론 180초 정도 불을 붙인다. 3시간가량 지켜본 뒤 문제가 없으면 통과다. 그동안 유럽 등 주요국은 휘발유를 사용해 불을 붙였다. 이렇게 하면 테스트를 할 때마다 동일한 결과가 나오지 않지만 LPG를 쓰면 항상 같은 결과 값이 나온다. 문 책임연구원은 “한국에서 LPG를 제안하면서 이제는 휘발유나 LPG 둘 다 쓸 수 있도록 기준이 바뀌었다”며 “자동차·부품 성능을 평가하는 기준을 국제사회가 결정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기준이 반영된 첫 사례”라고 강조했다.
인증센터는 광주 빛그린산단 내 2만9916㎡ 부지에 화재시험챔버, 배터리시험동, 충돌시험동, 충격시험동으로 구성됐다. 이곳에선 국제 기준(10개 항목)보다 많은 12개 항목의 배터리 안전성 평가를 진행할 수 있다. 지난 24일 정식 개관하기 하루 전 한국자동차기자협회 기자단에 주요 시설을 공개했다.
충격시험동에서는 한 연구원이 버튼을 누르자 쇠망치가 고정된 배터리를 강하게 때렸다. 시속 45㎞로 달리는 차량이 들이받는 것과 비슷한 강도라고 했다. 배터리가 장착된 차량의 옆면과 뒷부분 등을 압착기로 누르는 테스트도 한다. 배터리를 영하 40도에서 영상 60도까지 기온이 급격하게 변하는 환경에 노출시킨 뒤 정상 작동하는지 확인한다.
바닷물 농도의 소금물에 배터리를 1시간 동안 담군 뒤 발화나 폭발이 발생하지 않는지 점검하는 시험도 있다. 문 책임연구원은 “기아 전기차 EV6가 갯벌에 빠졌을 때 우린 이미 배터리에 문제가 없을 거라는 걸 확인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배터리 침수시험은 한국에서만 실시하다 최근 중국이 도입했다. 허리케인으로 큰 홍수 피해를 겪은 미국도 최근에서야 도입 여부를 따져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원은 주차 상태의 전기차에서 갑자기 불이 나는 상황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실제 관련 사고가 발생하고 있지만 명확한 대응책이 마련돼 있지 않아서다. 시동이 꺼진 상태에서도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이 위험을 감지해 소방이 바로 출동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을 구상하고 있다. 전준호 연구원 안전연구처장은 “제작사가 이 같은 기술을 도입하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인증센터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광주=글·사진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