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딱 딱’. 최저 기온 영하 4도를 기록하며 갑작스럽게 추워진 25일, 경북 울진 북면 신화리의 한 공터에서는 안전모를 쓴 10여명의 사람이 못질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한나절 동안 수백 번의 망치질을 하면서 구슬땀을 흘렸다. 20대부터 60대까지 나이도 성별도 다른 사람들은 크고 작은 건축용 목재에 10㎝ 길이의 못을 힘들여 박았다. 집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대못 박는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깨닫는 데는 불과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들은 지난 24일부터 25일까지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NGO 한국해비타트의 ‘선한 목수’ 사업에 참여한 봉사자들이다.
이틀간 참여한 박노아(43) 라이트하우스포항교회 목사는 “진통제를 먹고 이튿날 봉사에 나왔다”며 웃었다. 한국해비타트는 미자립교회 목회자의 사택을 고쳐주거나 새로 짓는 ‘선한 목수’ 사업을 올해 초 시작했다. 첫 번째 사업 현장인 이날 홍민기 라이트하우스무브먼트 대표의 연합 교회인 라이트하우스서울숲, 해운대, 포항 등 교회 3곳 목회자와 성도 20여명이 건축 봉사로 힘을 보탰다.
봉사자들이 주로 한 일은 목조 주택의 골조를 이루는 벽체를 만들기 위한 못질이었다. 허재희(36·여)씨는 “교회에서 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공지를 보자마자 신청했다. 걸레질이라도 도와야지 하고 참여했는데 못질을 해서 집을 지을 줄 몰랐다”고 말했다. 허씨처럼 이날 참가한 봉사자 대부분은 목재에 못을 박는 행위가 모여 사람이 사는 집이 완성된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한국해비타트 개인후원팀 채성현 매니저는 “봉사자의 작은 힘이 모여 전체 주택 시공의 20% 정도가 완성된다”고 설명했다.
현장에 있던 건축 전문가들은 봉사자 곁을 지키면서 벽체 작업에 꼼꼼함을 더했다. 1~2m의 긴 목재를 격자로 만들 때는 정확한 못질 위치와 못의 개수를 정해 주었고, 두께를 더하기 위해 목재 2개를 나란히 붙일 땐 “마치 하나인 것처럼 못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못질이 비뚤어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미세하게 수평이 안 맞는 것은 조립하면서 우리가 다시 조정한다”며 긴장을 풀어줬다.
건축전문가가 아닌 봉사자가 못질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못을 곧이 박는 경우는 그나마 나았지만 모서리를 연결하는 경우 비스듬히 못질하거나 단단한 나무 옹이 부분은 마치 돌이 박힌 것 같아 못이 들어가지 못하고 꺾이기 일쑤였다. 봉사자들은 수십 번의 반복을 통해 요령을 익혀갔다.
김은경(54·여) 집사는 “시키는 대로 못질을 했을 뿐인데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집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니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하나님이 보잘것없는 우리를 쓰시는 방식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봉사자 20여명이 이틀에 걸쳐 나눠서 한 일은 건축전문가 1명이 하루면 다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건축 봉사에는 여럿이 힘을 합쳐 누군가의 보금자리를 개선해준다는 뜻이 담겨 있다. 또 기계로 못질하는 것보다 사람이 직접 망치질하는 게 목재 간 결속력을 높여 집을 더 튼튼하게 만든다고 건축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이렇게 봉사자들의 땀으로 제작된 벽체는 조립 등 작업을 거쳐 울진 진복중앙교회 이복태(68) 목사의 사택으로 탄생한다.
이 목사는 8년여간 성도 9명이 출석하는 바닷가 앞 작은 교회에서 목회해 왔다. 성도 대부분 90세가 넘어 교회 수리 등 잡무는 이 목사의 몫이었다. 3년 전 태풍으로 교회 지붕이 날아갔을 때가 그랬다. 교회 일이라면 두 팔을 걷어붙이는 이 목사이지만 교회 옆에 딸린 사택 관리엔 신경을 쓰지 못했다.
반질반질한 교회 바닥과 달리 사택 곳곳엔 곰팡이가 피고 쥐와 벌레가 들끓었다. 이 목사는 “제대로 된 사택이 없어 후임자가 없을까 늘 걱정이 앞섰다. 감사하게도 ‘선한 목수’ 사업에 추천되어 기뻤다”고 했다. 현재 16평 규모인 사택은 18평으로 조금 넓어진다. 한국해비타트는 지난 6월 대상자 선정 작업을 마무리한 뒤 울진군기독교연합회의 도움으로 지난 7~8월 선한 목수 예배를 통해 모금 활동을 펼쳤다. 새로운 사택은 내년 2월 중 완성된다.
봉사자들은 오전 5시쯤 각 출석 교회에 모여서 진복중앙교회에 도착했다. 철거 예정인 이 목사의 사택에서 큰 가구와 가전을 나르는 등 오전 봉사를 시작으로 오후 벽체 작업까지 마치고 각자의 지역으로 돌아갔다. 봉사를 마친 이들은 벽체에 “주님 품 안처럼 편안한 안식처가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평안이 사랑하는 목사님 가정에 깃들길 바란다” 등의 문구를 남겼다. 아버지와 함께 봉사에 참여한 권예빈(27·여)씨는 “새로운 사택에서 목사님이 잘 쉬고 성도님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울진=글·사진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