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시에 있는 GS E&R 석탄열병합발전소는 구미국가산업단지에서 ‘약방의 감초’ 같은 존재다. 산단 내 48개 기업의 제조 공정에 필요한 열을 석탄화력발전으로 생산해 공급하고 있다. 신라면을 만드는 농심 구미공장과 삼성SDI, 도레이첨단소재 등이 이 열을 이용하는 대표적인 기업들이다.
1992년 준공 후 30년간 열을 공급해온 이 시설이 최근 난제에 봉착했다. 석탄열병합발전소의 심장부인 발전기를 공급한 회사가 해당 제품 단종을 선언한 탓이다. 핵심 부품이 고장이 났을 때 대체 부품을 구할 수 없다는 뜻으로, ‘고장’이 곧 ‘발전소 멈춤’이 될 상황이다. 발전소의 열 공급이 끊기면 산단 내 기업들은 당장 공정에 차질을 빚게 된다. 농심 구미공장에서 신라면을 제대로 생산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이곳은 국내 공급 신라면의 약 70%를 생산하고 있다.
GS E&R은 이에 따라 발전소를 석탄 대신 액화천연가스(LNG)를 연료로 하는 LNG열병합발전소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연료비가 더 들겠지만 이참에 온실가스 배출이 적은 친환경 연료로 바꾸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 계획은 첫 삽을 뜨지 못하고 있다. 허가권자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연료전환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어서다. 지금 승인을 받아도 환경영향평가와 건설 기간을 고려하면 전환까지 4~6년이 걸려 업체 입장에서는 속이 탈 지경이다. ‘무탄소 에너지 전환’을 천명한 정부가 되레 탄소배출 저감을 막고 있는 모양새다.
석탄화력발전 유지하는 이유
열 공급 시설에서 불거진 이 문제는 석탄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에너지 전환 난맥상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산업부는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2036년까지 58기인 국내 석탄화력발전소 중 28기를 LNG발전소로 대체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시점까지 30년 안팎으로 쓴 노후 발전소를 전환해 탄소 배출 저감이라는 국가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발표는 앞으로 13년 후에도 석탄화력발전소 30기는 운용한다는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다.
‘탄소 제로’가 시대적 과제인 상황에서 석탄발전소를 한 번에 전환하지 못하는 건 다름 아닌 ‘에너지 안보’ 때문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2022 에너지통계연보’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체 발전량에서 석탄화력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41.9%다. 갑작스럽게 석탄 퇴출을 추진하기에는 비중이 너무 크다.
이를 다 LNG발전소 등으로 교체했다가 LNG 수급에 문제가 발생하면 에너지 위기를 직면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면서 수급이 불안해졌다. LNG 가격이 오르는 정도로 마무리됐지만 아예 공급이 끊길 수 있는 경우의 수를 확인한 계기였다. 산업부 관계자는 “자원이 거의 없는 한국으로선 에너지원을 다변화하고 공급처도 여러 곳으로 분산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GS E&R처럼 ‘석탄→LNG’ 연료전환 허가를 신청한 곳은 3곳이 더 있다. 대전열병합발전과 한화에너지, 한주 등이다. 이들은 모두 기존 석탄열병합발전보다 큰 규모로 ‘재건축’하겠다는 내용을 신청서에 담았다. 한주를 제외한 두곳은 모두 500메가와트(㎿) 이상 규모다. 네 곳이 요청한 발전량은 산업부의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상 더 늘릴 수 있는 LNG 발전 규모인 1.1기가와트(GW)를 훌쩍 넘긴다. 여기에 신규 허가를 신청한 포스코인터내셔널 등 2곳도 있다. 가격이 높은 LNG로 전환하면 열 공급 단가가 급격히 올라가 기존의 공급 수준을 맞추려면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게 발전사들 입장이다.
무탄소 연료 기술 개발도 방법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산업부가 다음 달 초안을 발표할 계획인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LNG 전환 확대 문제를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문제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은 국회 심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점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국회의원들이 이 문제에 집중할 가능성은 작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당장 노후화 문제에 직면한 시설에 대해 단기적이라도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부도 이에 따라 산하기관인 에너지공단 내에 통합 심의 체계를 구축했다. GS E&R처럼 구조적으로 시급한 곳들이 있으므로 먼저 승인해야 할 곳을 심의를 통해 구분하겠다는 취지다. 에너지공단 기술검토위원회는 다음 달 첫 회의를 연다.
일각에선 꼭 다른 에너지원으로 전환해야 하냐는 반론도 있다. LNG발전 건설 비용이 수천억원인 만큼 최대한 기존 시설을 활용하면서 연료를 무탄소 연료로 바꾸는 기술을 개발하는 게 더 경제적이라는 의견이다. 석탄화력발전은 암모니아와 석탄을 같이 때고, LNG발전소는 LNG와 수소를 섞어 쓰는 식으로 탄소배출을 줄이는 방법이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석탄화력발전이 문제라기보다는 연료인 ‘석탄’이 문제인 것”이라며 “시설을 허물고 다시 지으면서 비용을 들이는 것보다 다른 에너지원을 써 돌리는 게 훨씬 경제적”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