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사기, 남의 일 아닌 나의 일

입력 2023-11-27 04:02

믿는 이에게 당하는 게 사기
비대면 기술 발달로 수법 교묘·다양, 피해도 커져

무조건 고수익 보장되는 투자처 이 세상에 없고
그런 걸 선뜻 남에게 알려주는 좋은 사람도 있을 리 없다

‘사기공화국’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
스스로 부당한 욕심 버리는 것

최근 전 펜싱 국가대표 선수가 연루된 사기 사건이 대다수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내용상으로는 전형적인 잡범 수준의 사기 범행이다. 그렇지만 스포츠와 방송을 통해 널리 알려진 유명인이 관련된 사안이었고 재벌, 성전환 수술 등 말초적인 이슈들이 함께 부각되면서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개인 간 사기 사건이 이번처럼 국민적 관심사가 된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결과만을 보고 설마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거짓말에 속았을까 의구심을 갖기도 하지만, 막상 당사자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그 심리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 막상 사기꾼의 목표가 되고 나면 누구도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 과거 재판에서 보이던 사기 사건은 이처럼 개인 간 사기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정권 핵심 인물의 비자금으로 형성된 구권(舊券)을 싸게 매각한다는 이른바 구권 화폐 사기 사건, 바닷속 보물선이나 해외 광산 개발 관련 투자 사기 사건, 기획 부동산 투자 사기 사건 등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많이 알려졌지만, 아직도 피해자들은 여전히 생겨나고 있다.

언제든지, 누구든지 사기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교육 수준이나 생활 수준과도 무관하다. 사기 피해는 다른 사람들의 일이 아니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적은 비용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대량의 메시지 전달이 가능해지면서 다중 사기 사건이 빈발하고 있다. 규모도 대형화·조직화하였다.

구치소에 가면 실형을 선고받는 이들의 절반은 보이스피싱 사기범이라 할 정도로 보이스피싱 범죄가 넓게 퍼져 있다. 세태를 반영하듯 코인 투자 사기 사건, 주식 리딩방 사건 등 더 다양한 형태의 사기 사건이 새롭게 출현하고 있다. 문자나 개인 메신저 프로그램을 통해 날마다 사기성 메시지가 넘쳐난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렸으니 다른 전화로 연락을 달라는 문자는 전 국민 중 안 받아본 사람을 찾기 어려울 지경이다. 주식이나 코인을 사면 큰돈을 벌 수 있다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링크 사이트에 접속하라는 메시지도 우리 휴대전화에 거의 매일 날아들고 있다.

사기의 유형은 갈수록 복잡하고 다양해지는 데 반해 사기범들의 체포나 처벌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범죄도 세계화하여 조직의 본부는 해외에 둔 채 국제전화나 메시지, 채팅 등의 수단을 통해 범행을 수행하고 인출책이나 전달책만 국내에 두는 범죄 조직이 늘고 있다. 조직의 말단에 있는 인출책 등을 아무리 붙잡아 처벌한들 이런 범행 자체를 저지하기는 어렵다.

사기 범죄자들은 자신의 말을 더 잘 믿게 하려고, 범행의 과정을 더 수월하게 하려고 우리 주변의 신뢰성 있는 수단을 즐겨 동원한다. 온 국민이 이름을 아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같은 유명인, 또는 정치인을 동반하거나 사회적으로 공신력 있는 기업이나 단체와 유사한 명칭을 사용하는 경우 더 쉽게 속게 된다. 강남의 타워팰리스에 산다거나 고급 외제차를 탄다는 이유만으로 사기 범인에게 맹목적인 신뢰를 보냈던 피해자도 많다. 박사, 교수, 사장 등 과장된 배경에 혹하기도 한다. 사기 피해는 나 하나에서 끝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가족이나 친지까지 끌어들였다면 피해는 더 심각해진다.

과연 나는 사기꾼의 표적이 됐을 때 무사히 벗어날 수 있을까?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사기는 믿는 사람에게 당하는 것이다. 사기꾼들은 자신을 믿게 만드는 데에서 범행을 시작한다. 그 사람이 권하는 대로 투자하면 반드시 큰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은 믿음, 계약만 체결하면 꼭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믿음, 어떤 문제가 생겨도 그가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믿음 등 더 절실하게 믿는 만큼 배신의 아픔은 크다.

깜짝 놀랄 만한 좋은 제안은 항상 함정이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한다. 원금 손실 위험 없이 이자만 많이 주는 투자처는 없다. 투자하기만 하면 무조건 오르는 주식, 코인도 없다. 그런 좋은 방법을 아무 이유 없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는 좋은 사람도 있을 리 없다. 사기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스스로 무리하고 부당한 욕심을 버리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자신의 능력보다 배경만 내세우는 사람, 목소리가 크고 달변인 사람, 허세가 심한 사람, 항상 급하게 돈이 필요하고 곧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유혹하는 사람, 이유 없이 작은 호의를 베풀고 어려운 부탁을 하는 사람은 늘 멀리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위험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최창영 법무법인 해광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