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석은 못 뛰었는데… ‘피의자’ 황의조 국대 출전 논란

입력 2023-11-24 00:02
연합뉴스

‘성관계 불법촬영’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황의조(31·노리치시티·사진)씨가 태극마크를 달고 경기를 뛰면서 비판 여론이 커지고 있다. 국내 스포츠계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대표팀 경기에 뛴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2021년 교제했던 여성에게 데이트폭력, 불법촬영, 재물손괴 등을 가한 혐의로 고소당했던 정지석(28·대한항공)씨는 당시 관련 폭로가 이어지자마자 소속팀 대한항공의 결정에 따라 즉시 훈련에서 배제됐다. 이후 V리그 1·2라운드가 진행되는 한 달여 동안에도 팀을 떠나 경찰 조사를 받아야 했다. 대한체육회는 이듬해 ‘대표선수 강화훈련 1년 자격 정지’ 처분을 내려 1년간 열리는 모든 국제대회에 국가대표로 참가할 수 없도록 했다.

반면 황씨는 아무런 제지 없이 경기에 출전했다. 대한축구협회와 대표팀을 이끄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아직 혐의가 입증되지 않았다”며 무죄추정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은 22일 인천공항 입국 현장에서 “명확한 혐의가 나올 때까지는 여전히 우리 선수”라고 감쌌다. 전날 2026 북중미 월드컵 중국과의 아시아 예선전에 황씨를 투입해 약 20분간 뛰게 한 것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대한축구협회 역시 황씨의 피의자 신분 조사 사실을 알고도 “의혹만 있지 아직 사실로 파악된 부분이 없다”며 “진행 상황을 지켜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대한축구협회는 타 종목과 달리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 종합대회에 한해서만 대한체육회에 강화 훈련 및 선수 발탁 등에 관한 부분을 승인받고 있다. 즉 이번 월드컵 예선전의 경우 대한축구협회가 자체적인 절차에 따라 선수를 선발하기 때문에 대한체육회가 개입할 여지는 없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23일 “이번 사안은 사법기관과 대한축구협회의 결정이 우선”이라며 조심스러워했다.

하지만 판결이 확정돼야 징계가 가능하다는 주장은 일관성이 부족하다. 축구대표팀에서 58경기를 뛰었던 수비수 장현수(32·알 힐랄)씨는 2018년 병역특례 봉사활동 실적을 허위 제출했다는 의혹이 일어난 지 일주일도 안 돼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안우진(25·키움 히어로즈), 이재영(27·테살로니키), 이다영(27·볼레로 르 카네)씨 등이 국가대표 자격을 내려놓은 것도 사법기관의 판결이 아니었다. 이들이 소속된 스포츠 단체에서 학교폭력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제도에는 공백이 있다. 현재 축구 국가대표팀 징계 및 결격사유를 담은 운영규정 17조는 형사처벌이 확정된 경우만을 담고 있다. 황씨처럼 피의자 단계에서 혐의를 부인하는 경우는 징계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운영규정 6조 성실의무 및 품위유지 조항이 있지만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위’라는 문구가 전부다. 어떤 행위가 품위를 떨어뜨리는 건지 명확한 정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누리 기자 nur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