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인천시 남동구의 한 카페 주인이 게이샤 콜롬비아 등 원두를 설명하며 커피를 추출했다. 커피의 맛과 향은 퍼붓던 비로 축 처져 있던 마음을 위로해주는 듯했다. 카페 이름은 ‘그리심 카페’. 카페 주인은 여느 카페 주인과 사뭇 달랐다. 지역의 작은 교회인 ‘꿈꾸는교회’를 섬기고 있는 손병훈(58) 목사였다. 그에게 있어 카페는 그냥 카페가 아니었다. 문화 사역 등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중요한 사역 도구였다.
당초 손 목사는 성도 100여 명이 있는 교회에 청빙돼 사역을 하고 있었다. 비교적 무난하게 사역을 이어가던 어느날, 불현듯 손 목사의 마음 속이 복잡해졌다. 지금 하고 있는 사역은 애초 자신이 생각했던 사역과는 거리가 있음을 느꼈던 것이다.
“갑자기 이런저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회사 직원인지 목회하는 것인지 하는 혼란함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하나님 앞에 교회 하나를 건실하고 이쁘게 세우고 가면 하나님이 더 기뻐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주저없이 사임하고 개척 현장에 뛰어 들었습니다.”
허허벌판에 들어선 손 목사의 앞길은 순탄치 않았다. 교회를 개척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 팬데믹이 터졌다. 이제 막 시작했는데 뜻대로 되는 것이라론 아무것도 없었다. 힘든 시간이 지속되는 가운데 알고 지내던 목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 분은 카페를 하면서 교회 사역을 병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몸이 안 좋아 더이상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제게 넘기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돌이켜보면 이것이 제게는 하나님께서 필요한 때에 내려주신 큰 전환점이었죠.”
손 목사는 카페를 사역에 제대로 접목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단순히 사역을 유지하는 경제적 보조 수단이 아닌 사역과 카페가 함께 가는 것을 지향했던 것이다. 그러면 전도도 용이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렇게 지난해 11월부터 주일에는 교회에서 예배를, 평일에는 카페에서 또 다른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카페 내외부 장식을 정갈하고 특색있게 꾸몄던 만큼 지역 교회 성도들은 물론 지나가던 일반 시민들도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카페 장식 뿐만 아니라 커피를 비롯한 다채로운 차들이 입소문을 타면서 카페는 갈수록 인기를 얻었다.
“사람들이 많이 오게 되면서 제가 원래 계획했던 카페 문화사역도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래서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손 목사는 올해 부활 주일에 카페에서 작은 콘서트를 열었다.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힘들어하는 난민들을 돕기 위해 마련한 행사다. 가까운 교회들과 연합하고 주변에 수소문해 실력 있는 찬양 사역자와 성악가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현자을 찾은 교인들과 지역 주민들이 공연 취지에 공감하며 자발적으로 지갑을 열었다. 모인 기부금은 총 170만원에 달했다. 첫 공연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면서 손 목사는 작은 콘서트를 정기적으로 개최할 예정이다.
손 목사는 카페 내외부에 있는 공간을 목회자 및 성도들과 지역 주민들의 모임 공간으로 내놓기도 했다. 가끔씩 무료로 음식과 차를 대접하며 인생 상담도 해줬다. 어떤 날은 일부 성도들이 가져온 음식들로 즉석에서 잔치 아닌 잔치도 열었다. 성도들은 물론 지역 주민들까지 손 목사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기회가 됐다. 손 목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전도의 손길을 내밀었다.
“카페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알게 된 것은 저마다 마음의 상처가 많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며 진심으로 조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소소하지만 즐거운 문화 활동을 제공했죠. 그런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문턱을 낮추다 보니 전도가 수월하게 이뤄지더군요. 약 1년 동안 10여 명에 이르는 소중한 동역자들을 얻었습니다.”
손 목사는 이런 사역을 통해 교계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우고 싶다고 했다. 카페를 하면서 돈을 벌어 교회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카페 교회가 지역 사회와 개척을 준비하는 목회자들에게 모델이 되게끔 하겠다는 것이다.
“저는 성도들에게 누누이 말합니다. 교회라고 간판 걸고 십자가 달았으면 그 값을 해야 한다고요. 교회는 선교하고 전도해야 하는 곳이에요. 카페 교회가 이를 잘 수행하기 위한 장점을 분명히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그리심카페와 꿈꾸는교회를 잘 성장시켜 교회를 개척하는 분들에게 좋은 모델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카페 자체가 하나님의 집으로 이곳을 드나드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가 잘 전파되도록 하고 싶습니다.”
인천=글·사진 최경식 기자 k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