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불편한 연금책’에서 “연금 재정의 지속 가능성과 노후 소득 보장의 조화는 1990년대 이후 복지국가 개혁의 핵심이었고, 다수 국가는 이 과제를 해냈다”고 말한다.
김 교수에 따르면 연금은 “가장 중요한 복지”이고, 연금 개혁은 “우리를 더 나은 사회로 데려가는 방법”이다. 그런데 한국의 연금은 어떤가. 그는 “이 세상에 이토록 엉망인 노후 소득 보장 제도를 가진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우리 정도의 경제력을 지니고 이토록 노후 소득 보장이 빈약하고 지속 가능성이 취약한 연금 체계를 지닌 나라는 달리 없다”고 혹평한다.
한국 연금이 문제라는 건 잘 알려져 있다. 연금 지급액이 낮아 노후 생활을 보장하기 어렵고, 내는 것보다 받는 것이 많은 구조라서 연금 고갈 위험성도 크다. 더구나 한국은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고, 고령화율이 가장 빠른 나라다. 연금이 건강하지 못하면 한국인의 삶이 위기를 맞게 된다.
그래서 연금 개혁은 엄청난 일이다. 전문가들에게만 맡겨두기엔 너무나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인들 가운데 연금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저자는 연금에 대한 대중들의 이해 부족과 무관심이 한국 연금 제도를 엉망으로 만든 한 원인이라고 본다.
‘불편한 연금책’은 대중들을 위해 쓴 연금 제도 해설이자 한국의 연금 비판이고, 연금 개혁을 위한 제안이기도 하다. 저자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재정전문가로 2015년 공무원연금 개혁 과정에 참여했고, 2010년부터 좋은예산센터 소장으로 예산 감시 운동을 해왔다. ‘국가는 내 돈을 어떻게 쓰는가’ ‘재정은 어떻게 내 삶을 바꾸는가’ 등 대중서도 써왔다.
저자는 먼저 연금을 경시하거나 연금이 손해라는 생각을 반박한다.
“연금 제도가 없다면 많은 사람이 노후 빈곤을 겪을 것이다. 그래서 강제로라도 젊었을 때 저축하여 노후를 대비하게 하는 연금 제도가 필요하다.” 게다가 국민연금은 “평균으로 계산하면 낸 보험료(+운용 수익)보다 많이, 그것도 아주 많이 받는다.” 국민연금이 고갈되지 않겠느냐고? “2040년경까지는 적립금이 쌓이지만 이후 급격히 줄어서 2050년대 중반이면 모두 소진될 전망이다.” 하지만 연금 고갈을 그대로 두고 볼 나라는 없다. 독일, 영국, 스웨덴 등 여러 나라들이 연금 개혁에 성공했다.
다만 지금 국민연금이 중장년 세대에게 유리하고, 청년 세대에게 불리한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청년 세대가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을 반대하는 건 맞지 않다.
저자는 “보험료를 지금대로 유지하면 기금 고갈 이후의 보험료는 감당이 어려운 수준으로 올라가야 한다”면서 “보험료 인상이 늦어질수록 청년세대는 불리하다”고 알려준다.
국민연금의 고갈을 막고 지급액을 높여 노후 소득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려면 보험료 인상은 불가피하다. 지금 한국의 연금 개혁 논의는 얼마를 더 내고, 얼마를 언제부터 받아야 하느냐에 집중돼 있다. 저자는 국민연금 강화를 위해서는 보험료 인상 외에도 주목할 부분이 있다고 말한다. 국민연금 가입 기간(보험료 납부 기간) 확대가 그것이다.
연금 가입 기간을 보면 유럽 주요 8개국은 모두 30년 이상이며, 평균 36년이 넘는다. 우리나라는 현재 기준으로 이들보다 19년 정도 짧고, 30년 뒤에도 10년 이상 짧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 수급액을 낮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짧은 가입 기간 때문이다. 가입 기간이 10년이 안 돼 아예 수급권이 없는 사각지대도 넓다.
저자는 가입 기간을 늘리는 게 국민연금 개혁의 최우선 과제라고 주장하면서 현재 59세인 가입 상한 연령을 수급 직전인 64세로 올리기, 군 복무 기간에 보험료 내기, 출산·양육 기간에 보험료 내기, 18세 자동 가입 등을 방안으로 제시한다. “가입 기간 확충 방안만 제대로 실행되면 국민연금 급여액은 제법 높아진다.”
저자가 또 하나 강조하는 것은 퇴직연금 수술이다. 퇴직연금은 국민연금과 함께 노후 보장을 위한 두 축으로 설계됐다. 월급쟁이들은 국민연금에 필적하는, 혹은 그보다 더 많은 금액을 퇴직연금에 내고 있다.
하지만 퇴직연금으로 노후를 대비하겠다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지급액이 얼마 안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퇴직연금 운용사가 국민연금에 훨씬 못 미치는 실적을 지속적으로 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2021년까지 5년간 국민연금의 연평균 수익률은 7%가 넘었다. 같은 기간 퇴직연금 수익률은 2% 미만이다.” 5%포인트의 차이가 얼마나 큰 것인지 보자. 월급 400만원인 사람이 수익률 2%로 30년간 퇴직연금에 가입했을 때 원리금은 1억6000만원 정도 된다. 수익률이 7%라면 원리금은 4억원이 넘는다.
저자는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외국처럼 높이면 지급액이 크게 늘어나고, 노후 보장 기능도 강화될 수 있다고 본다. 그는 “퇴직연금은 공적 목적을 지닌 제도”라며 민간 금융사에만 맡겨놓지 말고 국민연금공단이나 근로복지공단 등 공공기관이 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