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하나님의 일터] “병원 운영·의료선교… 고비마다 도움의 손길로 길 열어주셔”

입력 2023-11-25 03:05
정성운 부산대병원 원장이 지난 20일 부산 서구 병원장실에서 일터와 신앙에 대해 말하고 있다.

지난 7월 뙤약볕보다 더 강한 열기가 부산대학교병원 로비를 덮고 있었다. 노조원들의 총파업으로 울리는 구호 소리와 암 환자들의 울분, 깊은 탄식 소리가 한데 뒤섞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병원 한쪽에서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는 성경 말씀을 읊조리는 사람이 있었다. 정성운(61) 원장이었다. 그는 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성경 말씀을 암송했을까. 그 뒷얘기는 지난 20일 부산대병원장실에서 들을 수 있었다.

당시 병원 노사는 마라톤회담 끝에 합의할 수 있었다. 정 원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끝이 안 보였고 앞이 깜깜했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다. 그 말씀대로 됐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협상에 나섰는데 보이지 않는 힘을 주셨다”고 말했다.

부산대병원은 의료 질 평가 2년 연속 ‘1-가 등급’을 획득했다. ‘1-가 등급’은 전국 병원에서 7개뿐이다. 비수도권에서는 부산대병원이 유일하다. 하지만 부산대병원은 전국 국립대병원 중 가장 협소하고 병원 건물 중엔 1966년 준공한 건물도 있고 본관은 79년 준공돼 44년째 사용할 만큼 해결할 숙제가 많다. 응급실 역시 권역응급센터가 아닌 지역응급센터에 머무는 실정이다.

부산대병원이 위치한 부산 서구는 의료관광 특구로 지정돼 있다. 2029년 완공예정인 가덕도 신공항과 가까워 러시아 몽골 중동 동남아시아 등에서 부산대병원으로 의료관광을 올 수 있다. 특히 2030 부산엑스포가 유치되면 수백만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부산을 방문하게 돼 의료관광 인프라와 국가 행사 등의 기회를 살려 지역사회에 기여함과 동시에 병원도 발전할 수 있다.

부산대병원은 본원과 양산부산대병원의 전자의무기록인 EMR(Electronic Medical Record) 시스템을 통합해 국가사업인 ‘의료데이터 중심병원’과 ‘의료 마이데이터’ 등과 연계할 계획이다. 병원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환자 치료다. 본원은 외상센터 호흡기센터 암센터로, 양산 분원은 장기이식 어린이병원 재활병원 한방병원 등으로 특화돼 있다. 이런 특화 기능을 부각해 최적의 치료가 가능한 지역 대학병원이라는 인식을 확산할 예정이다. 수도권 대형병원에 가지 않더라도 지역 내에서 중증 치료를 최종적으로 끝내도록 하는 ‘지역 완결형 의료체계’를 확립해 나가는 데 부산대병원이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정 원장은 4대째 신앙 가정에서 태어나 믿음을 유산으로 받았다. 의사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중학생 때부터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외할아버지가 감리교 목사였으며 인천부평화랑교회 정창욱(59) 목사가 동생이다. 지난해 별세한 어머니(고 황성택 권사)는 마리아처럼 끊임없이 기도하는 분이었다고 한다.

정 원장은 의료선교를 통해 예비하시는 하나님, 적시 적소에 도움의 손길을 주시는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했다. 특히 의료선교 특성상 의료장비와 약품을 준비해 가야 하는데 장비와 관련해 현지 세관 당국과 실랑이하는 과정이 많았다. 돈을 요구하는 불법 행위와도 맞서야 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세관에서 선교팀 일행을 붙잡고 의료물품과 장비를 압수했다. 2시간 동안 밀고 당기는 협상 끝에 의료장비와 약을 세관에 그대로 두고 숙소로 향했다 한다. 이튿날 공항으로 출발하려고 하자 세관에서는 장비와 약품 절반을 돌려줬다. 선교팀은 절반만 들고 수마트라섬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가지고 간 약과 장비가 딱 적당했다. 세관에서 물품을 모두 내줬으면 전부 싣지도 못하고 버릴 뻔했다. 수마트라섬에는 이틀간 의료사역을 펼쳤고 준비한 약을 전량 소진했다. 그렇게 돌아오니 세관에서 나머지 약과 물품을 돌려줬다.

정성운(왼쪽) 부산대병원 원장이 지난 여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니아스섬을 찾아 의료선교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정 원장 제공

정 원장은 “지나고 보니 하나님께서 약을 맡아 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가져간 물품을 세관에서 빼앗기지 않았다면 나중에 차량 문제나 수송료, 분실·파손 등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하나님은 기가 막히게 우리 물품을 맡아주셨다”고 말했다.

보르네오섬 의료선교 때도 약을 빼앗겼다. 24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강행군 속에서 의료팀이 가져간 물품과 약을 모두 가져갔더라면 그 약 정리하는 데만 30시간 이상 걸렸을 텐데 세관에서 압수하는 바람에 일행은 쉬면서 재충전을 할 수 있었다.

의료선교는 영적 싸움이기도 하다. 정 원장은 “하나님은 그때마다 피할 길을 열어 주셨다. 준비 과정에서 겪은 내적 갈등도 현지에서는 안개처럼 사라졌다”며 “사탄의 방해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은 도와주셨다. 예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순조롭게 의료선교를 감당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부산 성산교회(이재섭 목사) 시무장로인 정 원장은 다양한 종류의 환자를 대한다. 가장 인상적인 환자는 성경책을 선물했는데 그 환자가 교회에 출석해 다시 성경책으로 보답했을 때다. 그는 병원에 입주한 업체 경영인들과 병원 직원에게 성경책을 자주 선물하고 영상예배도 전달한다. 한번은 조폭 출신의 젊은 환자에게 위로의 말과 함께 성경책을 선물했는데 청년은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정 원장은 “시대는 급변하고 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뿐이다. 내일은 우리의 시간이 아니다. 오늘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시간”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일은 하나님의 영역이다. 먼 앞길을 생각하지 않고 주어진 일에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겠다”고 덧붙였다.

부산=글·사진 정홍준 객원기자 jong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