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중공업은 전기차용 배터리 사업이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22일 재계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은 2012년 4월 캐나다 전기차 부품업체인 마그나 이카(Magna E-Car)와 배터리 시장 진출을 위한 협약을 맺었었다. 조인트벤처까지 설립했다. 2억 달러를 투자해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생산 공장을 만들기로 했었다. 지금으로부터 11년도 더 된 시점의 이야기다.
비전은 거창했다. 2014년부터 연간 1만 팩 규모의 배터리를 생산하고 유럽과 미주에 8개 공장을 세워 2018년 40만 팩, 2020년 80만 팩으로 생산량을 늘린다는 구상이었다. 북미와 유럽 배터리 시장 점유율 30%라는 목표도 제시했다.
그러나 더는 진척이 없었다. 2010년대 중반 불어닥친 조선업 불황에 HD현대중공업은 투자 여력이 없어 결국 2017년 사업을 접었다. 회사 관계자는 “무리였더라도 ‘배터리 사업을 계속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말이 아직도 나온다”고 말했다. 지금은 선박용 리튬이온 전지 등 선박 관련 배터리 연구에 힘쓰고 있다.
시대를 앞서간 기업은 또 있다. LS그룹은 2004년 배터리 소재 사업에 뛰어들었다. 같은해 LS전선은 음극재 기업 카보닉스를 인수했다. 음극재는 양극재와 함께 배터리 핵심 소재다. 세계적으로 양산 전기차가 드물던 때여서 LS전선은 수년간 적자를 낸 카보닉스를 충분히 지원하지 못했다. 이후 LS엠트론의 음극재 사업부로 넘겼다가 2010년 포스코켐텍(현 포스코퓨처엠)에 헐값에 팔았다.
LS엠트론은 비주력이던 동박 사업도 철수했다. 2017년 미국계 사모펀드에 동박 사업을 넘겼다. 코로나19 이후 전기차 시장이 호황기를 맞기 직전이었다. LS엠트론은 사모펀드가 3년 만인 2020년 SK그룹에 재매각해 4배가량 차익을 보는 걸 지켜봐야만 했다. LS그룹은 올해 ‘LS-엘앤에프 배터리솔루션’ 합작사를 만들어 배터리 소재 사업에 다시 도전장을 내밀었다.
배터리 1위 기업 LG에너지솔루션을 키워낸 LG그룹에도 아쉬운 사업이 있다. 바로 제약·바이오 분야다. LG그룹은 선도적으로 1970년대부터 바이오에 공을 들여왔다. 신약 개발 등 성과도 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핵심 사업을 ‘전자·통신·화학’으로 정하면서 제약·바이오에서는 힘을 뺐다. 2002년 LG생명과학을 분사한 게 대표적이다. 투자가 줄자 신약 개발이 중단됐고 핵심 인력도 줄줄이 회사를 떠났다. LG생명과학은 2017년 LG화학에 합병됐지만 존재감은 미미하다. 올해 3분기 기준 LG화학의 생명과학 부문 매출은 2910억원으로 전체의 2.15%에 그쳤다.
김민영 기자 m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