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 정확히 1년 전이었던 지난 4월 10일은 선거제도 개편의 법정 시한이었다. 그러나 여야는 여전히 ‘게임의 룰’인 선거제도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총선 120일 전’ 예비후보 등록은 다음 달 12일부터 시작된다. 선거제도 개편 여부가 초읽기에 몰려 있는 상황인 것이다.
선거제 개편 협상의 핵심은 지난 총선에서 ‘위성정당’ 출현으로 혼란을 초래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개선해 사용할지, 아니면 위성정당을 제도적으로 원천 방지할 수 있는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회귀할지 여부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특정 정당이 지역구 선거 의석을 정당 득표율만큼 얻지 못할 경우 비례대표 의석으로 일정 부분을 보장해 거대 양당의 틈바구니에서 지역구 당선자를 내지 못하는 소수 정당에 정당 지지율에 상응하는 의석을 보장해주는 것이 도입 목적이었다.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과거 비례대표제로, 지역구 선거 의석수와는 별개로 단순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나누는 제도다. ‘병립형 비례대표제’의 장점은 거대 양당이 위성정당을 만들 유인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그러나 거대 양당이 비례대표 의석도 휩쓸어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이 어렵다는 것은 단점으로 꼽힌다.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24일 “두 제도의 긍정적·부정적 측면이 뚜렷한 상황에서 여야가 비례대표제에 대해 합의하지 못할 경우 내년 총선에서 혼란이 재현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꼼수’로 오염된 ‘소수정당 원내 진입’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을 유리하게 하자는 취지로 2020년 21대 총선에서 도입됐다. 그러나 거대 양당이 비례대표만을 공략하는 위성정당을 내면서 탈이 생겼다.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은 미래한국당을, 더불어민주당은 더불어시민당을 각각 창당했다. 21대 총선이 끝난 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취지대로라면 소수 정당에 돌아갔어야 할 19석과 17석이 각각 미래한국당과 더불어시민당에 돌아갔다. 거대 여야가 비례 의석까지 나눠 가진 것이었다.
현재 국민의힘은 위성정당 논란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병립형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고 있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지난 17일 “국민의힘은 병립형으로 비례대표 선출 제도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국민의힘은 준연동형이 유지될 경우엔 위성정당을 낼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명분과 실리 사이, 여야의 딜레마
키를 쥐고 있는 쪽은 민주당이다. 민주당도 병립형으로 합의할 경우 ‘실리’적으로 의석수의 손해가 없다. 그러나 소수 정당 원내 진입이라는 ‘명분’을 위해서는 준연동형을 포기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이탄희 의원 등 민주당 의원 54명은 “김대중과 노무현 정신이 만든 연동형 비례제 유지를 당론으로 국민 앞에 재천명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지난 22일 ‘공직선거법 개정안’(김상희 의원 안)과 ‘정치자금법 개정안’(이탄희 의원 안)을 묶은 ‘위성정당방지법’의 당론 채택을 민주당 지도부에 촉구했다.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지역구·비례대표 선거 양쪽에 후보자 추천을 의무화하고, 비례대표 후보자 추천 비율을 지역구 후보자 추천 비율의 20% 이상으로 강제하며, 위반할 경우 해당 정당 후보자 등록을 전부 무효로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위성정당을 낸 모(母)정당이 비례대표를 내 비례대표 투표 용지에 모정당의 정당명이 기입되면 유권자들이 모정당에 표를 던져 위성정당의 효과를 제한할 수 있다는 의도다. 정치자금법 개정안은 총선 2년 이내 모정당과 위성정당이 합당할 경우 정당 보조금을 약 50% 삭감하는 내용이다.
이 같은 법안에 대해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통과만 되면 위성정당 방지에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안”이라면서도 “선거법은 여야 합의가 필요한데, 민주당이 당론을 모아도 국민의힘이 동의할 가능성이 적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조·송·추’ 신당도 변수
비례대표제를 활용해 ‘반윤(反尹) 연대’를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준연동형을 활용해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내지 않는 대신 진보 진영 소수 정당과 연대해 총선에 임해야 한다는 구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그룹은 ‘조·송·추’(조국·송영길·추미애)다. 이들이 위성정당은 아니고 이른바 ‘참칭정당’을 창당한 뒤 ‘반윤 연대’에 합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야권 내부에서 나온다. 그러나 위성정당이나 참칭정당이나 모두 ‘꼼수’라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는 지적에 힘이 실린다.
이재명 대표의 의중은 병립형 쪽에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비명(비이재명)계인 이원욱 의원은 22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이 대표는 비례대표 공천을 받아 안정적으로 당선되고 싶을 것”이라며 “결국 이 대표는 민주당 당원 자격으로 출마할 수 있는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선거구제를 바꾸고 싶어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친명(친이재명)계는 이 같은 주장을 일축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막판까지 국민의힘 입장 변동과 참칭정당 출현 여부 등을 고려해 선거 제도를 전략적으로 선택할 방침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조속한 병립형 채택을 압박하고 있다. 정개특위 여당 간사인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21일 “권역별 병립형 비례제를 양당 의원총회에서 추인받기로 합의했는데, 민주당이 의사 일치를 보이지 못해 두 달 반 넘게 기다리고 있다”면서 “국민들도 투표 행위 결과가 명확히 드러나는 (병립형) 선거 방식을 선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동환 이종선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