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을 국빈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영국 의회 연설에서 “한·영 수교 140주년을 맞이한 올해는 양국 관계가 새롭게 도약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그러면서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의 명언을 언급하며 “한국과 영국이 긴밀히 연대해 세상의 많은 도전에 함께 응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영국의 국회의사당인 웨스트민스터궁에서 영국 상·하원 의원들을 대상으로 ‘도전을 기회로 바꿔줄 양국의 우정’이라는 제목으로 약 15분 동안 영어 연설을 했다. 영어 연설은 지난 4월 미국 국빈방문 때 미국 의회 연설 이후 두 번째다. 영국 의원들은 중간중간마다 박수를 치며 윤 대통령의 연설에 화답했다.
윤 대통령은 “한국은 유럽 국가 중에서 영국과 최초로 1883년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며 양국간 오랜 교류 역사를 되짚었다. 윤 대통령은 특히 6·25전쟁을 언급하며 “영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8만명의 군대를 파병했고, 1000명이 넘는 청년들이 알지도 못하는 먼 나라 국민들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연설 도중 이날 의회에 초청된 한국전 참전용사 콜린 태커리(93)씨를 직접 호명하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태커리씨는 지난 7월 부산에서 열린 정전 70주년 행사 때 방한해 우리 민요 ‘아리랑’을 불렀다.
윤 대통령은 “이번 국빈방문 계기에 체결하는 ‘한·영 어코드(합의)’를 기반으로 이제 양국은 진정한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로 다시 태어난다”며 협력 강화 의지를 천명했다. 그러면서 “양국의 협력 지평은 디지털·인공지능(AI)·사이버 안보·원전·방산·바이오·우주·반도체·해상풍력·청정에너지·해양 분야 등으로 크게 확장돼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또 “영국이 비틀즈, 퀸, 해리포터, 그리고 데이비드 베컴의 오른발을 갖고 있다면, 한국엔 BTS, 블랙핑크, 오징어게임, 그리고 손흥민의 오른발이 있다”며 “이제 양국이 창조적 동반자로서 인류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기여할 때”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연설을) 마무리하겠다”면서 “우리의 우정이 행복을 불러오고, 우리가 마주한 도전을 기회로 바꿔주리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문구를 인용하면서 영국 국민들의 마음에 다가간 것이다.
윌리엄 왕세자 부부는 이날 의회 연설 전에 거행된 공식 환영식을 앞두고 윤 대통령 부부의 숙소를 직접 찾았다. 윤 대통령 부부는 윌리엄 왕세자 부부와 함께 자동차를 나눠 타고 공식 환영식이 개최되는 호스 가즈 광장에 도착했다.
윤 대통령은 영국 찰스 3세 국왕과 함께 왕실 근위대의 사열을 받았다. 국왕군 왕립 기마포병대와 명예 포병중대가 각각 41발의 예포를 발사했다. 의장대장은 한국어로 사열 준비 구호를 했다.
윤 대통령 부부는 이후 영국 왕실이 준비한 백마 4마리가 이끄는 황금마차에 올라 ‘더몰’이라 불리는 대로를 따라 버킹엄궁으로 이동했다. 7대의 마차 행렬 중 맨 앞의 마차에 윤 대통령과 찰스 국왕이, 그 뒤 마차에 김건희 여사와 카밀라 왕비가 각각 탑승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국 기업들이 반도체·배터리·원전·방위산업 분야를 주도하면서 영국은 한국을 공급망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런던=이경원 기자, 정현수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