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겪는 주요 문제 중 하나는 일자리 편중이다. 청년들이 유독 대기업과 전문직을 선호하면서 노동력이 한쪽으로 몰리고 있다. 이는 수도권 집중 등의 문제를 심화하는 요인이 되는 한편 경제 전반의 역동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수한 청년 인재가 연구·개발, 창업 등 혁신을 주도하는 분야 대신 안정적인 대기업이나 전문직에 쏠리면 한국 경제의 질적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다케우치 요시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차장은 매력적인 중소기업 육성을 해답으로 내놨다. 대기업 입사만을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아붓는 청년들을 울타리 밖으로 꺼내와야 한다는 것이다. 다케우치 사무차장은 20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저출산·고령화사회 대응과 성장전략’ 국제 콘퍼런스 기조연설을 한 뒤 이인호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과 한국의 청년, 중소기업 정책에 대해 대담을 나눴다.
△이 부의장=한국의 청년 실업률은 절대 수치로 따지면 다른 OECD 국가보다 낮다. 하지만 다른 인구 계층의 실업률과 비교하면 청년 실업률이 높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고 보나.
△다케우치 사무차장=흥미로운 수치가 있다. 한국의 청년 실업률은 낮은데, 청년 고용률은 OECD 평균 이하다(OECD 평균 43.7%, 한국 27.8%). 상당수 청년이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대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젊은이들이 아무것도 안 하고 좋은 정규직 일자리만을 위해 1~2년씩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시장과 중소기업-대기업 구조를 유연하게 바꿀 필요가 있다.
△이=한국 중소기업들은 가장 큰 어려움으로 인력 부족, 특히 젊은 인력의 부족을 꼽는다. 이는 중소기업들이 생산성이 낮고 임금도 적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다케우치=한국은 중소기업 비중이 높지만 임금, 생산성은 대기업과 비교해 낮다. 높은 생산성, 안정적 일자리, 고임금을 이유로 다들 대기업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 이는 한국 사회의 고착화된 구조다. 이 구조를 깨뜨리기 위해서는 중소기업들이 충분히 매력적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디지털화를 통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다음으로는 청년들의 창업을 권장해야 한다. 벤처캐피털과 정부 재정 지원으로 도와야 한다. 독일은 창업 허브가 있고, 호주는 정부가 기업에 직원 재교육을 위한 보조금을 준다. 기존 중소기업의 생산성 제고와 함께 신산업을 하는 새로운 기업들이 등장해야 한다. 그것이 현재 대기업 위주의 노동 구조를 바꿀 방법이다.
△이=최근 한국에서는 고학력 청년들의 전문직 선호 현상이 뚜렷하다. 의사나 변호사 같은 직업이 혁신적인 일자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경제 전반으로 보면 역동성이 떨어질 수 있는데,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다케우치=사실 우리 사회에서 의사나 변호사가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는 않다. 전문직이 아닌 다른 혁신적 일자리를 어떻게 청년들에게 알릴지를 고민해야 한다. 직업 교육을 통해 청년들에게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에 가더라도 직업 교육을 통해 자격증 없어도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내 교육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이=수도권 편중 문제도 있다. 일자리나 교육, 의료, 문화 인프라가 수도권에 몰려 있어 청년 인구가 집중되고 있다. 비싼 집값에 경쟁적 환경에 놓이는 청년들은 결국 출산을 기피하게 된다. 지방 발전을 위한 정책 조언을 한다면.
△다케우치=세종시 같은 사례가 지역경제 개발을 하려는 정책적 시도인데, 이런 시도를 보면 그동안 한국이 잘해왔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도시와 농촌의 노동 분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농촌에서 실버산업을 육성한다면 기업들은 농촌으로 옮겨갈 수 있다. 고령 노동자들은 농촌 요양시설에서 근무할 수도 있다. 지역 발전 정책을 만들 때 이런 지점들을 고려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한국 경제 전반에 대한 사무차장의 진단도 듣고 싶다. 한국은 5~10년 전까지 빠르게 성장하다가 이후로 성장률이 둔화하고 있다. 한국 경제와 관련한 정책 제안을 할 수 있을까.
△다케우치=단기적으로는 불확실성이 너무 많다. 한국뿐 아니라 모든 나라에 해당하는 상황이다. 한국은 그동안 너무 많이 성장했기 때문에 자본 투자가 곧바로 고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성장률 제고를 위해서는 노동력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부족한 문제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 특히 중소기업에 집중하면 경제 성장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화 등을 통해 중소기업의 생산성을 높인다면 경제 성장의 엔진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금융시장도 불확실성이 굉장히 높다. 글로벌 고금리·고물가 기조로 각국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세계 9위 수준으로 안정적인 편인데, 한국 금융 시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다케우치=상당히 잘 대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원화 약세로 문제가 있었지만 지금은 안정적인 상황이다. 전 세계 투자자들이 한국 경제를 신뢰한다는 것은 좋은 신호다. 다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등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생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도 자만하면 안 된다. 문제가 생기면 외국 투자자들이 가장 먼저 빠져나가기 때문에 돌발변수 등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케우치 사무차장은
다케우치 요시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차장은 2021년 11월 임명됐다. 일본 재무성에서 대외국장, 장관 특별보좌관 등을 지내며 경제 관료로서 경력을 쌓았고, 일본 G20 의장국 재무팀을 이끌기도 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아시아개발은행(ADB) 등과 여러 업무에서 협력했다. 도쿄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다케우치 요시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차장은 2021년 11월 임명됐다. 일본 재무성에서 대외국장, 장관 특별보좌관 등을 지내며 경제 관료로서 경력을 쌓았고, 일본 G20 의장국 재무팀을 이끌기도 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아시아개발은행(ADB) 등과 여러 업무에서 협력했다. 도쿄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