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조명환 (13) 에이즈와의 전쟁… 고통 받는 이들에게 하나님 사랑을

입력 2023-11-23 03:01
조명환 회장이 2007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아시아 태평양 에이즈학회 회장 자격으로 참석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조 회장 제공

아시아·태평양 에이즈학회장으로 에이즈 창궐 지역을 다니면서 겪은 일들은 특별했다. 에이즈와 전쟁을 치르는 실제 현장을 보았고 가난과 질병의 고통과 아픔이 얼마나 사람을 힘들게 하는지 체험했다.

2006년 여름 나는 태국 방콕학회 사무실에서 에이즈바이러스에 감염된 20대 남자를 상담했다. 대화 중 그의 아내가 임신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직감적으로 아내와 아기 역시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것임을 알았다. 그의 아내를 만나기 위해 집을 방문했는데 그들은 작은 하천 옆에 무허가로 지은 판잣집에서 살고 있었다.

검사를 진행하자 예상대로 아내와 아기 모두 양성으로 나타났다. 아내는 흐느껴 울고 남편은 미안한 마음에 아내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다. 그들에게 나쁜 소식만 전해 주고 그냥 집을 나올 수 없었다. 나는 내 친구이며 동료인 태국 최고의 에이즈 의사인 프라판 박사에게 아기가 에이즈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고 치료비를 후원했다. 신생아 에이즈 환자는 짧은 시간 치료해도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 아이는 2년 만에 치료를 마치고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 50여만원으로 한 생명을 구한 이 경험은 이후 내가 가난해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에이즈 어린이들에게 치료비를 제공하는 국제적 기금 모금 운동을 펼치게 된 계기가 됐다.

스리랑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에이즈총회를 준비할 때였다. 스리랑카 북동쪽에 타밀 타이거스라는 반군이 총회를 빌미로 스리랑카 정부를 곤경에 빠뜨리려 테러를 시도했다. 스리랑카에서는 총회 개최를 취소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하나님께 기도한 끝에 나는 반군 지도자를 직접 만나 담판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물학 교수가 왜 그런 일까지 해야 할까. 그들이 나를 인질로 잡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태산 같았지만 내가 꼭 만나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금식기도로 만남을 준비했다.

스리랑카 군대의 협조로 반군을 만났다. 그들은 내 눈을 두건으로 가리고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울창한 산림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총을 든 반란군 30여명이 서 있었다. 드디어 타밀 타이거스 지도자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내 심장은 무섭게 뛰고 있었지만 나는 차분히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당신들은 스리랑카 정부를 상대로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국제 사회는 당신들을 에이즈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이용해 독립을 쟁취하려는 야비한 사람들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는 한마디 말도 없이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더니 차 한잔하겠냐고 했다. 찌그러진 알루미늄 그릇에 나온 따뜻한 홍차는 나의 얼었던 심장을 녹이기에 충분할 만큼 최고의 맛이었다.

그는 여전히 나의 제안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미소만 지었다. 곧 부하가 다가오더니 미팅이 끝났으니 가자고 했다. 나는 다시 두건을 쓰고 그들과 처음 만난 장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내내 ‘예수 이름으로, 예수 이름으로, 승리를 얻겠네’를 불렀다.

2007년 8월 스리랑카 총회는 무사히 개최됐다. 물론 타밀 타이거스는 오지 않았고 아무런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리=박용미 기자 m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