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앞세워 선거제 바꿨지만
꼼수에 무너져 결과는 같아
앞으로 가려니 실리 못 챙기고
돌아가려니 명분 찾을 수 없어
딜레마 빠져 눈치보는 민주당
원칙 지키는 게 유일한 살 길
꼼수에 무너져 결과는 같아
앞으로 가려니 실리 못 챙기고
돌아가려니 명분 찾을 수 없어
딜레마 빠져 눈치보는 민주당
원칙 지키는 게 유일한 살 길
21대 총선에서 위성정당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가정을 전제로 과거를 평가하는 건 쓸데없는 일이다. 게다가 제도가 바뀌어도 유권자의 선택은 같다는 전제 아래 정당득표율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건 억지일 수밖에 없다. 위성정당이 없었다면 더불어민주당 지지자 중 적지 않은 유권자가 성향이 비슷한 정의당에 전략적으로 투표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전에는 들어본 적도 없고, 심지어 해괴하기까지 한 위성정당이 내년 4월 다시 등장할지 모르니 따져보는 게 시간낭비만은 아닐 것이다.
2020년 4월 15일 총선 결과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에서 163석을 얻었고, 정당 득표율은 38.78%였다. 국민의힘의 전신인 미래통합당은 84석, 33.84%였다. 이들이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았다면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7석씩을 더 받아 각각 170석과 101석이 됐을 것이다. 지역구에서 심상정 의원만 당선된 정의당은 15석, 한 곳도 얻지 못한 국민의당은 9석을 확보해 캐스팅보트는 아니어도 강한 발언권을 가졌을 것이다. 만약 선거법이 개정되지 않아 20대 총선의 선거제를 그대로 유지했다면 어땠을까. 정당명부식 1인2표제는 무시하고 정당득표율을 단순 적용하면 4당의 의석 비율은 183대 101대 6대 5가 된다. 국회에서 그 난리를 쳐서 선거법을 바꿨는데 위성정당 때문에 실제로는 별로 달라진 게 없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연동형에 반대해 ‘빠루와 함마’ 곤욕을 치른 국민의힘이 일찌감치 병립형 회귀를 선언한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의석수와 득표수의 괴리를 극복해보겠다거나, 극단으로 치닫는 정치 현실을 바꾸겠다는 비전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지만 적어도 위선은 아니다. 여기에 이준석 신당이라는 변수가 가세했다. 이 전 대표가 거대 양당의 폐해에 짓눌린 세력을 모아 총선에 나선다면 누구보다 연동형의 혜택을 크게 받을 것이다. 지지층은 겹치는데, 정치적으로 적대적인 세력이 정당득표율을 근거로 유의미한 의석수를 확보한다는 뜻이다. 지역구에서의 성패와 별개로 든든한 보험에 드는 셈이다. 국민의힘 입장에서 이건 악몽이다. 명분도, 실리도 없는 연동형이 달가울 리 없다.
문제는 민주당이다. 민주당만 지난 총선에서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민주당은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쳐 169석, 국민의힘은 선거 후 위성정당과 합당해 109석이다. 민주당이 11석을 손해보는 구조다. 그래도 과반이 훌쩍 넘긴 것 아니냐고 하겠지만 다음 총선도 그렇다는 보장은 없다. 11은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이 지점에서 민주당의 고민이 깊어진다.
실리는 포기할 수는 없고, 돌아가자니 명분을 찾을 수 없다. 다 같이 위성정당을 안 만들면 좋겠는데 뾰족한 방법이 없다. 국회에는 위성정당방지법이 5건 계류돼 있다. 비례대표 공천을 의무화하거나 선거 후 2년 안에 위성정당과 합당하면 국가보조금을 삭감하자는 식이다. 그러나 이런 임시방편은 효과가 의심스럽다. 무엇보다 이준석 신당을 견제해야 하는 국민의힘이 필사적으로 반대할 게 뻔하다. 과반의 힘으로 통과시키면 그만이지만, 대의에 합의하지 않으면 허점을 파고든 꼼수가 또 나올 것이다. 경기의 룰을 또 일방적으로 바꿨다는 비난도 매우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현행 선거제를 유지하며 위성정당을 다시 만드는 것도 답답한 일이다.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 말대로 ‘천벌 받을 짓’을 반복해야 한다. 조국·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송영길 전 대표가 연합한 신당의 등장도 곤혹스럽다. 이들이 20대 국회의 열린민주당처럼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결집해 국회에 입성한다면 국민들의 정치혐오를 감당하기 힘들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동안 연동형이나 다당제같은 말을 다시는 꺼낼 수 없게 될 것이다. 서울과 수도권 유권자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실리라도 챙길 수 있을지 계산이 안 나온다. 민주당이 시간을 끌다가 병립형에 슬쩍 합의할 것이라거나, 이미 합의해놓고 시침떼고 있다는 추측이 쏟아지는 이유다. 딜레마에 빠진 민주당, 해법은 하나 뿐이다. 2019년 선거법을 바꿀 때 국민들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겠다던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이익만 찾아 재고 또 잴 게 아니라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 무엇인지부터 정해야 한다. 그걸 근거로 당의 입장을 만들어 국민에게 제시하는 게 순서다. 그렇게 못할 거면 더는 개혁을 말할 자격이 없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