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어른의 생각

입력 2023-11-22 04:02

청량리역에서 ITX-청춘 열차를 타고 오전 8시11분에 출발하면 춘천역에 9시10분에 도착한다. 한림대에서 맡은 과목은 ‘대중문화와 스토리텔링’이었다. 자본주의의 욕망,기업의 마케팅같이 시류에 따라 변하는 것과 사랑이나 원칙, 이타주의같이 세상의 변하지 않는 원칙을 시나 소설, 드라마, 미술과 음악같은 문화 콘텐츠에서 끌어와 자신의 해석과 관점을 녹여 발표하고 토론하는 시간이었다. 교수의 발제와 학생들의 발표가 야구의 캐치볼처럼 주고받으며 이어졌다.

하필 열 번째 강의의 주제는 ‘진정성과 선의’였다. 사회적 약자나 소외된 계층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아끼지 않는 영국의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면서 분초를 다투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환을 살폈다. 아마존, 구글 등 디지털 강자들의 ESG 활동과 환경과 우정 등의 주제로 디지털 테크를 접목한 코카콜라의 콘텐츠 마케팅도 소개했다. 재소자들의 교화와 교정을 위해 전국 55개 교도소에서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는 감사나눔신문의 ‘100 감사’ 캠페인의 의미와 인연에 대해서도 들려주었다. 범죄는 단죄해야 하지만 재범을 막아야 밝은 사회로 갈 수 있다. 학생들의 발표 순서가 왔다. 활발한 발표력을 보여주며 잘 따라오던 학생들은 이날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발표 내용 때문이 아니었다.

수업은 출입문에 부착된 자동출결시스템으로 학생들의 출석을 체크한다. 가끔 출석을 부르는 선생도 있다는데 학생들의 자율성을 키운다는 명분으로 이제껏 출석을 부르지 않았다. 이게 문제였다. 잠시 강의실을 둘러보니 뭔가 이상했다. 평소와 달리 앞자리가 많이 비어 있었다. 38명이 앉아 있는데 스마트폰엔 48명이 출석된 것으로 체크돼 있었다.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스마트폰 블루투스로 체크가 가능해 출석을 부르지 않는 수업은 체크만 하고 수업에 들어오지 않는 학생들이 있다고 했다. 10명의 학생이 출석을 속인 것이다. 허탈하고 허무했고 화가 치밀었다. 마음을 가라앉혀야 합리적인 입장과 조치가 떠오를 것이다.

돌아오는 기차에서 보이는 남한강가는 빗방울 저편으로 푸른 장관을 풀어놓고 있었다. 자유분방했던 대학시절과 의외의 발상과 견해로 기특했던 학생들을 떠올리자 어른의 생각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분명 거짓을 저질렀다. 하지만 지금의 분노는 합당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혈기왕성한 젊은이들, 순한 양을 바라선 안 된다. 사실 누구나 몇 번쯤 그랬었다. 그러나 한순간이나마 양심을 외면한 잘못을 그냥 눈감아 줄 순 없었다. 당사자에게 거짓 출석의 사유서를 요구했다. 출석을 부르지 않아 상대적으로 점수를 손해본 다른 학생들에겐 앞으로 출석을 부르겠다고 약속했다.

남은 것은 나였다. 학생의 얼굴을 보고 이름조차 떠올리지 못하는 선생이 과연 선생의 자격이 있을 것인가. 사실 하버드대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의 강의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시스템에 기대 출석을 부르지 않아 양심을 속이는 빌미를 준 것은 내 게으름과 도덕적 허세 때문일 수 있다. 악은 견제와 감시가 없는 곳에 피어난다는 철학자 해나 아렌트의 지적처럼 나의 방심이 학생들을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적 어른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듯 말이다. 강의 말미에 이렇게 덧붙였다. “자신의 책임이 따르는 길 앞에서 어느 길로 가야 할지 고민이 될 땐 정직함을 택하라.” 여러분은 어떤지 모르겠다. 내겐 예외가 없었다. 어떤 잘못이나 실수도 지나고 보면 모두 지나갈 일이었다. 회피하다 잘못을 키워 더 큰 후회를 불렀다. 매사에 정직하다면 성찰적 인간이란 인문의 궁극도 필요 없을 것이다.

김시래(성균관대 겸임교수·미디어문화융합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