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좁은 복도를 걷는다. 자세가 특이하다. 똑바로 걷다가 엉덩이를 한쪽으로 내미는 ‘섹시한’ 포즈 취하기를 반복한다. 영상 속 주인공은 미국 현대미술가 브루스 나우만(82)으로 청년 시절에 만든 ‘콘트라포스토 자세로 걷기’(1968) 작품이다. 고대 이집트 문명에서 주로 나타났던 좌우균형의 인체 조각상 형태는 그리스 문명으로 넘어가면서 리듬감 있는 S자 형태의 자세가 출현하기 시작했다.
서울 강남구 언주로 코리아나미술관이 개관 20주년을 맞아 국제 기획전 ‘스텝×스텝’전을 하고 있다. 전시 도입을 여는 나우만의 영상이 시사하듯이 이 전시는 인간의 가장 일상적인 행위인 걷기가 예술가들에게 어떻게 영감을 주고 예술로 변신해 미술 장르를 확장시켰는지 추적한다. 코리아나미술관이 지속적으로 ‘신체’(body)에 주목해 전시를 기획해온 연장선에 있다.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는 등 영화계에서 이름을 먼저 알린 말레이시아 출신 중국 영화감독 차이밍량의 ‘행자’(2012년)도 흥미롭다. 빠르게 걷는 사람들 사이로 감독의 페르소나인 배우가 홍콩 도심 곳곳을 불가사의할 정도로 느린 속도로 걷는 행위는 현대의 속도 지상주의를 성찰하게 한다.
에브리 오션 휴즈의 퍼포먼스 영상 ‘감각과 지각’(2010·사진)은 주인공이 걷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누운 채 촬영된 것이다. 인간의 감각과 지각 사이의 간극을 시원하게 설명해주는 영상이다. 2007년부터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해온 아티스트 듀오 폴린 부드리·레나테 로렌츠의 영상 설치작품 ‘거꾸로 움직이기’는 2019년 베니스비엔날레 스위스관 대표 작품으로 첫 공개된 후 국내에 처음 소개된다. 현재 리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하는 강서경 작가의 설치 작품, 신제현이 코리아나미술관 제작 지원을 받아 제작한 관객 참여형 신작 ‘MP3 댄스-스텝’ 등 5개국 현대미술가 7인(팀)의 현대미술 작품 15점이 나왔다. 11월 30일까지.
손영옥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