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하러 가는 마음가짐 ‘잘하게 해달라’가 아닌 ‘감사합니다’로 변했죠”

입력 2023-11-21 03:02 수정 2023-11-21 12:24
성우 이민하씨가 녹음실에서 내레이션을 준비하는 모습. 이민하씨 제공

세계적 기업 애플은 광고에 성우 목소리를 안 쓰기로 유명하다. 음악과 효과음만으로 단순하게 구성하는 형태가 대다수다. 그런데 2021년 초 애플의 컴퓨터 광고에 긴 내레이션이 들어갔다. 이 광고의 국내 제품 목소리는 성우 이민하(39)씨가 맡았다. 성우명 ‘미나리’로 활동하는 이씨는 지난 5년간 구글 코카콜라 등 글로벌 기업은 물론 국내 대기업 광고까지 1000여편에 목소리로 출연했다. 대세 성우인 이씨를 최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씨는 서울대 국악과를 다녔지만 대학 졸업쯤엔 취업을 준비해 출판사 음반유통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했다. 음악 콘텐츠 제작 회사도 다녔는데 제작비 절감 차원에서 우연히 참여한 성우 작업에 매력을 느꼈다. 1년 넘도록 회사 일과 성우 준비를 병행했다. 그러다 2016년 광고 성우 일에 집중하기 위해 회사를 나왔다. 하지만 3년이 다 될 때까지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성우가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쯤 남편인 김상민 이롬 부회장을 만났다. 이씨는 김 부회장에게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이 맞을지 진로 고민을 털어놓았고 김 부회장은 ‘당신의 목소리는 특별하고 재능이 있으니 집중해 보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6개월 뒤 첫 TV 광고로 데뷔했다.

‘안티크리스천’에 가까웠던 이씨는 남편 덕에 하나님을 제대로 믿게 됐다.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움 없는 남편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방송광고는 보안 유지로 녹음 직전에서야 제품명과 대본을 알려준다. 신앙을 가진 뒤 이씨는 더 담대하게 일할 수 있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가진 모든 것이 원래 내 것이 아님을,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여유가 생겼다”며 “녹음 당일 운전하는 차 안에서 하는 기도가 어느 순간부터 ‘잘하게 해 달라’가 아닌 ‘감사합니다’로 변했다”고 했다.

되는 일은 하나 없고 나만 뒤처진 것 같은 두려움에 떨어봤기에 그는 저마다의 광야에 놓인 청년을 볼 때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청년들에게, 그리고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과거의 저에게 ‘혼자 고민하고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껏 하나님께 기대라’ 말하고 싶어요. 당장은 멈춰 있는 듯 보여도,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그 시기의 나 또한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다듬어지는 중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자꾸 완벽을 추구하느라 좌절하지만 하나님은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쓰임받게 해주시니 결국 부족할 게 없더라고요.”

이민하씨가 남편인 김상민 이롬 부회장, 쌍둥이 두 아들과 함께 국제사랑의봉사단(단장 황성주 이롬 회장·가운데)에 기부하는 모습. 이민하씨 제공

올해 초 쌍둥이 아들을 출산한 이씨는 도움이 필요한 활동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출산 기념으로 국제사랑의봉사단에 1000만원을 기부했고 청소년 보호와 자립을 돕는 단체인 ‘야나’에도 참여했다. 기독교적 양육 지식을 쌓으려 관련 교육 프로그램도 수료했다.

“하나님 사랑을 전하는 목소리로 쓰임받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광고 성우로 자리 잡을 수 있던 것은 제 능력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 생각해요. 받은 축복과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