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속 세상] 미래위해 자자, 멸종위기 종자

입력 2023-11-21 22:05
김가영 씨드뱅크 수집팀원이 16일 경북 봉화군의 한 야산에서 오갈피나무 종자를 수집하고 있다. 그는 “대상을 지정한 종자를 수집할 때에엔 그야말로 산속에서 바늘 찾기”라고 토로했다.

경북 봉화군의 첩첩산중에 철통같은 방어태세를 갖춘 시설이 하나 있다.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 자리를 잡은 씨드뱅크다. 멸종위기나 현지에서 보전이 어려운 자생식물 종자를 수집해 증식할 수 있는 환경을 연구하고 자생지에서 멸종위기 시 사전에 저장된 종자로 다시 복원하는 걸 목적으로 하는 곳이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씨드뱅크에서는 2009종, 1만4228점(2023년 기준)의 종자를 보유 중이다.

이종숙 연구원이 건조실에서 수집한 종자들의 건조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종자는 식물 증식을 위한 씨앗이다. 다음 세대를 위한 첫 번째 발자국이고, 미래 인류를 위한 자산이다. 기후위기, 생물 다양성 감소, 인류의 급격한 소비로 종자 보존은 시급한 문제로 떠올랐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씨드뱅크에선 다섯 가지 절차를 거쳐 종자를 수집하고 연구·보존한다. 종자를 가져오는 ‘수집’ 단계, 수집한 종자를 정리하는 ‘정선 및 분류’, 종자가 증식할 수 있는 환경을 파악하는 ‘검사 및 특성 조사’를 마치면 장기 보존을 위해 알루미늄 파우치에 담는 ‘포장’ 단계를 거쳐 씨드뱅크에 ‘입고’된다. 연구를 마친 종자는 씨드뱅크에 저장하고, 일부분은 ‘알파인하우스’에서 보존한다.

김준혁 연구원이 연구실에서 정선한 종자를 살펴보고 있다. 이 단계를 끝내면 알루미늄 파우치에 밀봉해 장기 보존에 들어간다.

이다현 연구원이 영하 20도, 상대습도 45% 환경을 유지하는 씨드뱅크에서 보존 중인 종자를 점검하고 있다. 씨드뱅크에 입고된 종자는 멸종위기나 외부에서 증식 요청이 있을 때 출고된다.

증식을 위한 온도와 습도, 계절, 활성도 파악을 끝낸 종자는 영하 20도, 상대습도 40% 환경에서 잠든다. 스스로 발아하는 특성을 막기 위해 인위적으로 발아할 수 없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씨드뱅크에서 잠든 종자는 미래에 있을지도 모르는 ‘위기의 순간’에 다시 깨어나도록 깊은 잠에 빠져든다. 이종숙 씨드뱅크 연구원은 “종자가 조금만 높은 온도에 노출돼도 결로에 손상된다. 사람이 씨드뱅크에 들어만 와도 체온 때문에 온도가 올라가니까 오래 머물면 안 된다”고 주의사항을 강조했다. 나채선 씨드뱅크 야생식물종자실장은 “‘씨드뱅크 종자 속에 우리 미래가 있다’는 말을 슬로건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 말을 제일 좋아한다. 종자는 우리의 먹거리이고, 지켜야 할 자원”이라며 “보존하는 것이 미래세대를 위해 우리 자원을 남기는 길”이라고 역설했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 자리한 알파인하우스가 지난 17일 위용을 뽐내고 있다. 알파인하우스는 적절한 생육환경을 조성해 고산식물을 키우고 보존하는 공간이다.

봉화=글·사진 윤웅 기자 yoony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