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파두 사태, 경영진·주관사 정말 몰랐나

입력 2023-11-21 04:05

얼마 전 한 상장기업의 분기 보고서가 발표되자 시장은 발칵 뒤집어졌다. 지난 8월 1조5000억원의 기업가치로 화려하게 증시에 데뷔한 반도체 설계업체 파두가 상장 후 첫 분기 실적이 3억원에 그쳤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것은 상장 직전 매출이 5900만원이었지만 파두의 기업설명회(IR)에선 이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는 점이다. 회사 측은 대신 올해 ‘예상 매출액이 1203억원’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놨다. 투자자들은 분기 실적이 공개되자 “김밥집 매출이냐” “사기 상장이 확실하다”며 분노했다. 주가는 지난달 4만원 수준에서 최근 1만원대까지 빠졌다. 이 기업은 국내 기업공개(IPO) 사상 첫 주주 집단소송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주주들의 불만은 파두뿐만 아니라 상장 주관사,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으로까지 이어졌다. 주범은 확실해 보인다. 2분기(4~6월) 실적을 모른 채 7월에 IR을 진행했고, 8월에 상장을 진행한 파두다. 사업을 하다 보면 의도치 않게 실적이 나빠질 수 있다. 시가총액 500조원대의 브로드컴을 공모가 산정에 포함했어도, 적자기업임에도 1000% 수준의 성과급을 지급했어도 투자자들은 파두를 신뢰하고 미래 성장성을 보며 투자했다. 그런데 대표이사는 8월 초까지도 4~6월의 실적을 몰랐다고 한다. 주주들은 실망스러운 실적보다도 속았다는 상황에 더욱 분노한 것으로 보인다.

매출처가 많은 것도 아니고 사실상 정해져 있고 그곳에서 발주 요청도 없는데 실적을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면 대표이사 직무를 어떻게 수행할 수 있을까 싶다. 대표이사를 포함한 최고기술경영자(CTO), 최고운영책임자(COO), 최고재무관리자(CFO) 모두 서울대 출신 74년생이다. 특히 대표이사는 보스턴컨설팅그룹의 컨설턴트이자 베인앤컴퍼니의 파트너였다. 똑똑한 이들이 정말 몰랐을까.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변명이 아니라 진심을 담은 사과다. 제2의 파두를 우려한 에코프로머티는 이례적으로 상장 전 적자전환됐음을 고백했다. 일이 터지고 나서야 상장사들이 투자자에게 솔직히 실적을 공개하는 것 자체가 씁쓸한 일이다.

그렇다면 파두 상장에 함께한 주관사, 상장예비심사 승인을 한 한국거래소, 감독 당국인 금융감독원에는 문제가 없을까. 그들은 회사 측에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서 몰랐다고 항변하지만 파두의 기만에 상장 관련 기관들이 모두 속아넘어갔다는 점을 투자자들은 믿지 못한다. 당국은 사태 전말을 철저히 조사해야 할 것이다.

거래소가 파두 사태에 놀라 지난 17일 부랴부랴 주관사의 책임성을 한층 강화하는 등의 기술특례 상장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기술특례 상장제도는 기술력이 뛰어난 회사가 좀더 수월하게 상장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주는 제도다. 부실기업 발생 시 해당 주관사가 다음 진행하는 기술특례 기업 주식을 주관사가 되사도록 대책을 내놨지만 낯 간지러운 수준이다. 오히려 상장 문턱은 더 낮아져 부실 기업이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신규 상장기업 전체로 불신이 확산될 우려도 없지 않다.

좀더 폭 넓고 꼼꼼한 개선책이 필요하다. 우선 공모가 산정 시 예상 실적을 달성했을 경우에만 최대주주 등 임원이 주식을 매도하도록 해야 한다. 주관사의 경우 상장사에 대한 검증이 부실했던 것으로 드러나면 몇 년간 상장 업무를 못 하게 하는 처방도 검토해야 한다.

투자자들에게도 당부하고 싶다. ‘금융 당국이 알아서 감독하겠지’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예금이 아니라 투자 아닌가. 기업과 주관사를 비롯해 금융 당국은 당신의 재산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투자자라면 당신이 직접 당신 재산을 보호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도 기업 공부를 해야 한다.

이경준 혁신IB자산운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