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기후소송 등 중요사건 많은데… 정치 사건에 국민 기본권 사건 지연도

입력 2023-11-20 04:07

권한쟁의·탄핵 등 정치적 사건은 주목도가 높고 쟁점이 첨예해 일반 헌법소원 사건보다 더 많은 인력과 시간이 소모된다. 헌법재판관들 사이에서도 ‘정치의 사법화’로 인한 재판 지연이 심각한 문제로 논의되는 상황이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파장이 큰 정치적 사건이 접수되면 헌재 내부에 일종의 태스크포스(TF)가 꾸려진다. ‘검수완박’ 권한쟁의 심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 심판 같은 주요 사건의 경우 통상 연구관 5~6명 이상 투입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개변론까지 열어야 하는 사건에는 연구관이 8명까지 투입되기도 한다.

이종석 헌재소장 후보자는 지난 13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헌재 심리가 지연된다는 지적에 “중요 사건이 굉장히 증가했는데 그런 사건은 연구관 4~6명이 집중적으로 몇 달간 자료를 검토하고 보고서를 작성해야 해서 다른 사건 수십 건을 처리하는 정도의 품이 든다”고 말했다.

헌법재판관들은 재판관 전원이 참석해 사건심리 등 관련 절차를 논의하는 평의나 일상적 자리에서도 정치의 사법화, 사건 처리 지연과 관련된 문제 의식을 공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직무 권한정지 문제로 결론을 시급히 내려야 하는 탄핵 사건에 헌재 연구관이 투입되면 기존에 맡던 사건 처리는 사실상 일시 정지된다. 헌재는 유류분 제도 위헌소송 등 국민 실생활과 밀접하거나 사형제 존폐를 묻는 헌법소원, 기후위기 소송 등 사회적 방향을 설정하는 중요 사건을 다수 심리 중이다.

헌재 연구관 출신 변호사는 “헌재가 국민의 기본권 침해 관련 사건 같은 핵심적 과제에 좀더 집중해야 하는데 정치적 사건이 헌재로 몰리다 보면 그런 사건 처리는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헌재로 넘어온 정치적 사건의 결론이 내려지면 여야가 각자 입맛에 맞게 재해석해 다시 정쟁 수단으로 삼는 일도 빈번하다. 헌재 관계자는 “정치 사건은 아무리 좋은 결정이 나와도 다른 한쪽으로부터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며 “그로 인한 사법 신뢰 저하가 장기적으로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