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공룡’ 엑슨모빌이 내연기관 자동차의 수요가 2025년 정점을 찍은 뒤 내리막을 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이와함께 ‘하얀 석유 1등’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제시했다. 흰색 빛을 띤 리튬은 전기차 시대 몸값이 높아지면서 하얀 석유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엑슨모빌은 2027년부터 전기차 배터리용 리튬 생산을 시작하고, 2030년 리튬 업계 선두주자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세계 전기차 판매량이 둔화하고 있지만 기업들은 장기적 관점에서 다시 돌아올 전기차 전성기를 대비하고 있다. 올해 들어 투자 속도 조절에 나선 배터리 셀 기업들도 기술 경쟁력 확보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모습이다. 비철금속 기업, 종합상사, 석유 업체 등은 전동화 시대에 맞춰 사업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배터리가 내연기관을 대체하는 속도가 더뎌질 순 있어도 거스르기 어려운 대세라는 데 국내외 많은 기업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19일 각사 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는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연구·개발(R&D)비로 1조7874억원을 지출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2.5% 증가한 수치다. 완성차 업체의 전기차 관련 계획 조정에 따라 공장 가동률을 낮추고 일부 합작 투자 계획을 재검토하면서도 미래 경쟁력 확보에는 꾸준히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전기차 시대 도래를 확신하는 건 배터리 셀 기업만이 아니다. 배터리 소재 및 광물을 미래 먹거리로 낙점한 기업들의 투자 발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16일 에코프로, SK에코플랜트, 테스(SK에코플랜트의 전기·전자 폐기물 재활용 자회사)는 공동으로 2025년 완공을 목표로 헝가리에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을 짓기로 했다. 비철금속 전문 기업 고려아연도 이날 1480억원 규모 지분 투자를 통해 황산니켈 제조 기업 켐코를 자회사로 편입했다. 황산니켈은 양극재 소재인 전구체의 원료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다가올 50년을 대비하기 위해 배터리 소재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기업이 되겠다”고 말했다.
종합상사 LX인터내셔널은 이차전지 사업 진출을 공식화했다. LX인터내셔널은 지난 15일 1330억원을 투자해 인도네시아 니켈 광산(AKP 광산) 지분 60%를 인수했다. 향후 현지 제련소에도 투자해 부가가치를 높인 니켈을 수출한다는 구상이다. 전기차 저변 확대의 약점으로 꼽히는 충전 인프라 관련 투자도 진행 중이다. LG전자는 내년 상반기 중 미국 시장에 전기차용 완속 충전기와 급속 충전기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기후위기의 심각성, 각국의 전기차 정책, 막대한 기투자 등을 생각하면 전기차로의 전환은 정해진 미래”라며 “일희일비하지 않고 경쟁력을 다지는 기업이 결국 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