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서기관·우유 사무관, 널뛰는 물가 잡기엔 역부족

입력 2023-11-20 04:04
정부가 용량 축소 등을 통해 편법으로 가격을 인상하는 '슈링크플레이션' 실태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발표한 가운데 19일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방문객이 과자를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빵·우유 등 일부 식료품에 담당 직원을 지정해 물가를 잡겠다고 나섰지만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 품목이 전체 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일부에 불과한 탓이다.

19일 통계청에 따르면 최근 농림축산식품부가 전담자를 지정한 빵·우유·소고기·돼지고기 등 28개 품목의 소비자물가지수 가중치 합계는 88.6으로 집계됐다. 가중치란 소비자물가지수에 포함된 개별 품목의 지수상 비중을 나타내는 수치다. 전체 460개 품목의 가중치 총합인 1000을 기준으로 했을 때 88.6의 가중치는 약 8.9%에 해당한다. 이들 품목의 가격이 1% 하락해도 전체 소비자물가지수는 0.09%밖에 내려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더욱이 28개 품목 중 신선 농·축산물 일부 품목은 이미 전담자가 지정돼 관리해 왔다. 정부가 새롭게 ‘밀착 관리’를 강조한 가공식품만 따지면 전체 물가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낮아진다. 빵·스낵과자·커피 등 9개 가공식품의 품목별 가중치 합계는 23.4로 전체 지수의 2%에 불과하다. 이들 품목의 가격을 10% 끌어내려야 소비자물가가 0.2% 내려간다는 것이다.

정부가 물가를 잡을 타이밍을 놓친 측면도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8%로 9월(3.7%)보다 오히려 0.1% 포인트 올랐다. 정부의 당초 연말 목표치였던 2%대를 크게 초과한 수치다. 그러자 기획재정부·농식품부 등 물가 유관부처들은 이달 초에서야 각 부 차관을 물가안정책임관으로, 일선 사무관을 품목별 전담자로 지정해 ‘범부처 특별물가안정체계’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전담 직원이 생산 업체를 방문하고 업계와 간담회를 여는 등 현장을 찾아 수급 애로 요인을 빠르게 파악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가 물가 안정을 위한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가주거비까지 고려하면 이들 품목이 물가에서 실질적으로 차지하는 비중은 5%에도 이르지 못한다”면서 “물가 상승에 대한 근본적 대책은 결국 통화정책”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대책이 이명박정부 시절인 2012년 등장했던 ‘물가관리 책임 실명제’의 재림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업계의 ‘꼼수 인상’에 대한 정부 대응도 뒤처지고 있다는 평가다. 정부는 지난 17일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가격은 그대로 두고 제품의 양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한 실태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최근 김, 핫도그 등 일부 가공식품이 소비자 몰래 양을 줄여 사실상 가격을 올렸다는 문제제기에 따른 대처다.

그러나 슈링크플레이션은 세계적으로 고물가 기조가 이어진 지난해 이미 주목을 받은 현상이다. 브라질은 제품 용량이 바뀌면 6개월 동안 ‘새로운 무게’라고 표기하도록 법을 바꾸는 등 이미 대응을 시작했다. 프랑스도 업체가 제품 용량 변경 시 소비자 고지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세종=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