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총수의 ‘집안싸움’이 소송전으로 번지며 내밀한 가족사까지 법정에 오르내리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점입가경 양상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경기 침체 속에 수출과 실적 부진을 벗어나려고 안간힘 쓸 시기에 재벌가의 내홍이 경영 리스크를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故) 구본무 LG 선대회장의 유산을 둘러싼 LG가(家) 상속 소송 재판에선 최근 총수 일가의 사적 대화가 담긴 녹취록에 이어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치매 병력이 공식 거론됐다. 지난 16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2회 변론기일에선 구 선대회장의 부인 김영식 여사와 두 딸의 변호인 측이 증인으로 나온 하범종 LG 경영지원부문장(사장)을 상대로 “구자경 명예회장이 치매에 걸려 제대로 의사소통이 안 된 시점이 언제였느냐”고 따져 물었다. LG가의 장자 상속 원칙에 따른 구광모 LG 회장의 상속 경위를 묻는 취지였지만, 재계 안팎에선 “금도를 넘었다”는 말이 나왔다.
1925년생인 구 명예회장은 장남인 구 선대회장이 별세한 2018년 치매로 요양 중이었다. 구 명예회장이 별세한 2019년 이후에도 그의 병력은 암묵적인 비밀로 이어졌다고 한다. 재계 관계자는 “소송의 본질 대신 망인들의 사적 영역만 소비되는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은 법정 밖 ‘장외 공방’이 더 뜨겁다. 노 관장은 지난 9일 이혼 항소심 첫 변론준비기일을 마친 뒤 포토라인에서 준비한 듯한 작심 발언을 한 데 이어 언론 인터뷰를 통해 “남의 가정을 깬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며 수위를 높였다. 이에 최 회장 측도 “혼인 관계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전 이미 파탄 상태였다. 재판부가 ‘여론몰이식 언론 플레이’를 자제하라고 당부했음에도 이를 무시한 것에 유감을 표한다”고 반박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