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를 넘나들며 국경을 넘는 북한이탈주민 탈출기는 우리 사회에서 흔한 이야기가 됐다. 하지만 우리 밖 세계는 달랐다. 북한 국경수비대와 중국 공안의 감시, 동남아 밀림을 뚫고 자유를 찾아 나서는 이들의 이야기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북한 주민의 탈북 여정을 가감 없이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Beyond Utopia·감독 마들렌 가빈)가 국제무대에서 호평받는 이유다.
영화는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선 관객상을, 제24회 우드스톡영화제(WFF)에선 최고상인 베스트 다큐멘터리 영화상과 편집상을 받았다. 이들 수상에 힘입어 영화는 지난달 23일 미국 전역의 극장 600여 곳에서 개봉됐다. 미국 연예매체 버라이어티는 지난 9월 “선댄스·WFF에 이어 아카데미상의 주목을 받기 위해 경쟁에 돌입했다”고 평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으로 국내에 소개된 영화는 내년 2월 국내에서 정식 개봉한다. 지난 6일엔 외교부 청사서 단체 관람도 이뤄졌다. 박진 장관 등 외교부 공무원 400여명이 모인 이 자리엔 탈북자 인권운동가인 갈렙선교회 대표 김성은(58) 목사도 참여했다. 영화에서 동남아 밀림을 헤치며 북한 일가족 5명을 자유의 땅으로 이끈 이가 김 목사이기 때문이다. 영화 주요 인물인 그를 만나기 위해 지난 8일 충남 아산의 탈북민 공동체를 찾았다. 갈렙선교회가 지난해 문을 연 이곳엔 염소와 닭 농장, 텃밭과 비닐하우스 등이 조성돼 있다. 이날 김 목사는 이곳에서 함께 지내는 탈북민 서너 명과 입동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한 알의 밀알
“외국에선 요즘 세상에 사람이 이곳저곳에 팔려가는 걸 잘 이해하지 못하더군요. 밥 때문에 국경을 넘는다는 걸 알려주면 특히 충격을 받고요.”
영화에서 2000년부터 지금껏 탈북민 1000명을 구한 의인으로 소개된 그에게 해외 청중은 찬사를 보냈다. 그는 “제가 직접 구출한 사람은 300명 정도다. 1000명 구출 자금을 홀로 충당하긴 불가능했다”며 “나머지는 브로커에게 구출을 부탁한 경우다. 한국에 오면 정착금이 나오니 손해 볼 건 아니라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탈북민 구출과 북한 실상을 알리는 걸로 유명한 김 목사지만 원래부터 이 일을 한 건 아니다. 국내에서 원자력 발전 관련 기술자, 중소기업 대표를 지낸 그는 중국 단기선교 때 꽃제비(일정한 주거 없이 먹을 것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북한 사람)를 만난 것을 계기로 1998년 북한 선교를 시작했다. 북·중 접경지대에서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성경 교육을 한 후 고향에 파송하는 ‘성경 100독반’ 운영을 돕는 게 주 사역이었다.
김 목사의 사역 방향은 아내 박에스더 목사를 만나면서 탈북민 구출로 바뀐다. 아내를 한국으로 데려올 방안을 강구하다 몽골 베트남 라오스 등 ‘탈북 루트’를 답사·개발한 게 시작이다. 탈북민 구출 사역의 대가는 컸다. 아들을 현지에서 돕다 중국 감옥에 갇혔던 어머니, 중국에서 사업하며 탈북 자금을 지원하다 추방당한 동생…. 김 목사도 사역 일선에서 몸이 상하기 일쑤였다. 강 건너 탈북민에게 줄 옷이 담긴 이민 가방 3개를 목과 어깨에 걸치고 꽁꽁 언 두만강을 건너다 넘어져 목에 철심을 박는 대수술을 받았다.
사역 후원 요청을 하러 다니다 7세 아들을 잃은 사건은 부부에게 큰 상처로 남았다. 몸이 다소 불편했던 아들이 식사 도중 기도가 막힌 게 화근이었다. 그는 “탈북민 살리려고 내 새낄 희생했다는 게 참 비참했다. 지옥에 들어간 기분이었다”며 “아내는 하나님께 ‘죽여달라’는 심정으로 40일 금식기도에 돌입했다”고 회상했다.
‘금식 기도 중 수많은 북한 주민이 지옥에 빠지는 환상을 봤다’는 이야기를 접한 김 목사는 다시 사역을 맡기로 다짐한다. 그는 “아내 이야기를 듣는데 깨달음이 왔다. ‘탈북민도 우리 골육 아닌가. 이대로 죽게 할 순 없다. 아이 여생만큼 노력해서 한 생명이라도 구하자’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독교적 표현으론 ‘밀알’이다. 한 알의 밀알이 심겨 지금의 1000명이 구출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 생명 살리는 게 천하를 구하는 일
김 목사는 그간 국내외 여러 매체와 협력해 탈북 과정의 실상과 북한의 인권 현실을 알려왔다. 본인이 일일이 설명하는 것보다 영상으로 전하는 게 더 효과적이란 판단에서다. 이번 영화 참여도 같은 맥락에서 결정했다. 물론 단점도 있다. 사역이 알려지면서 그는 ‘탈북 루트를 공개해 탈북민을 위험에 빠뜨렸다’ ‘하나님의 일을 떠벌리고 다닌다’는 비판을 종종 받는다. 김 목사는 “중국과 동남아 국가 당국은 이미 ‘탈북 루트’를 안다. 도중에 잡힌 탈북민을 심문할 때 확인하기 때문”이라며 “그럼에도 검거가 어려운 건 탈출 수단도 다양할 뿐더러 이들의 정확한 탈출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중국에서의 이동이 어려워지자 탈북민 구출 비용도 크게 올랐다. 팬데믹 이전엔 300만원이면 가능했지만 지금은 비용이 2000만원 가까이 든다. 게다가 갈렙선교회는 동남아 안가 쉼터를 운영해 비용이 더 든다. 쉼터에선 탈북민에게 3개월간 숙식을 제공하며 기독교 교육 및 상담, 쉼을 제공한다. 탈북민이 원할 시엔 세례식도 연다.
사역 자금은 주로 개인 후원으로 충당한다. 칠순 잔치 축의금을 후원금으로 쾌척한 어르신, 시한부 환자로 보험금을 기부한 폐암 4기 환자 등이 대표적이다. 김 목사는 “‘탈북민 한 명만 살려도 천하를 살리는 거다’며 없는 살림에도 마음을 전하는 이들을 만나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현재 갈렙선교회의 탈북민 공동체에는 10여 명이 생활 중이다. 이곳을 확대해 탈북민에게 몸과 마음을 휴양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게 향후 목표다. 그에게 탈북민 섬김을 위해 한국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을 물었다. 김 목사는 “과거에 그랬듯 교회가 한 생명을 살리는 일에 초점을 맞췄으면 한다”며 “주님의 방향에만 집중하다 보면 탈북민을 넘어 북한에도 복음이 전해질 날이 곧 올 것”이라고 말했다.
아산=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