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 깎은 김범수, 뼈 깎는 쇄신 이끌어낼까

입력 2023-11-20 04:03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지난해 10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모습. 뉴시스
‘은둔형 경영자’를 자처하던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사법 리스크’ 앞에 180도 바뀐 행보를 하고 있다. 17년 만에 수염을 말끔히 밀고 경영 전면에 나서 연일 쇄신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시세조종 등의 혐의로 창사 이래 최악의 위기를 맞은 카카오가 추락한 기업 이미지를 회복할지는 불투명하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김 전 의장은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수사 등의 악재를 겪으면서 이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논란을 일으킨 계열사에 책임을 엄격하게 묻겠다는 강한 어조는 과거에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모습이다. 카카오 한 관계자는 “앞으로 문제 있는 계열사는 카카오 공동체에서 정말 배제될 것 같은 분위기”라고 말했다.

지난해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서비스가 마비됐을 때도 카카오에는 ‘창사 이래 최대 위기’라는 수식이 붙었다. 당시 김 전 의장은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도 경영 복귀 의지를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같은 해 국정감사에 출석해 “제가 무엇인가 한다는 건 아직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김 전 의장은 지난 7월 카카오 노동조합의 집회에도 대응하지 않았다. 노조는 고용 불안 등에 대한 김 전 의장의 사과를 요구하고 그에게 항의 서한을 보냈으나 끝내 답장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달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가 SM 시세조종 혐의로 구속되자 김 전 의장은 돌변했다. 수사의 칼날이 그를 향하고 있을 때다. 김 전 의장은 “모든 사업을 원점에서 검토하겠다” “카카오 공동체는 더 이상 스스로 스타트업으로 인식하면 안 된다” 등의 강도 높은 발언을 이어갔다.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는 “카카오의 자유로운 기업 문화는 다른 빅테크와의 차별점이었지만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인식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카카오는 최근 외부 감시 기구 ‘준법과 신뢰 위원회’(이하 준법위)에 막강한 권한을 부여했다. 계열사의 법 위반 리스크가 확인될 경우 내부 조사 요구권, 직접 조사 실시권, 의사결정 조직에 대한 긴급 중단 요구권 등을 행사할 수 있다. 준법위는 위원장인 김소영 전 대법관을 포함해 7명으로 꾸려졌다. 다음 주 첫 회의를 열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의장은 홍은택 카카오 대표이사 등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와 월요일마다 공동체 경영 회의도 주재한다. 지난 13일 회의에선 카카오모빌리티의 독과점 논란과 관련해 저렴한 가맹수수료 체계를 마련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