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행정전산망 마비 다시는 없도록 근본 대책 세워라

입력 2023-11-20 04:01
서울 시내 한 지하철역 무인 민원발급기 화면에 19일 오전 ‘전산 오류로 인해 현금 발급만 가능하다’는 문구가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7일 국가 행정전산망이 마비되면서 전국 민원 서비스가 모두 멈춘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주말 동안 복구 작업을 거쳐 19일 시스템이 사실상 정상 복구됐다지만 그 과정에 보여준 정부의 안일한 대처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시민들은 정부 전산망 오류로 각종 민원서류 발급이 전면 중단되며 큰 불편을 겪었다. 인감증명 등 서류를 못 떼 부동산과 금융거래에 차질을 빚었고, 세입자들은 전세 확정일자 등록을 못해 가슴을 졸였다. 행정전산망을 제대로 유지하는 것은 정부의 기본 중 기본 업무인데 ‘세계 최고의 디지털 정부’를 국정과제로 내세운 이 정부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니 한심한 일이다. 정부가 내세운 장애 원인은 인증시스템에 연결된 네트워크 장비의 이상이다. 하지만 이 경우라면 수 시간이면 복구가 가능하다는 것이 정보통신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다른 원인이 있는 건 아닌지 제대로 분석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오류 발생 후 정부의 대처도 허술했다. 시스템 마비 이후 상황을 안내하는 문자 발송도 없었고, 사고 원인과 복구 시점도 어제 오후에서야 나왔다. 카카오나 네이버 같은 민간 정보통신 기업이 사흘째 복구 조치도 하지 않고 원인 발표도 안 했다면 난리가 났을 일이다. 최근에도 정부는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한다면서 서비스 장애에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정작 정부는 국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민원 서비스 관리에 소홀했다. 이참에 정부는 행정전산망의 대대적인 시스템 점검과 원인 분석, 책임 소재 규명 등을 속히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전산망은 전국 공무원들이 업무를 처리하는 전자정부 핵심 시스템이다. 2007년 전국 시·군·구에 보급됐는데 15년이 넘은 시스템을 제때 정비하지 않아 생긴 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시스템이 노후화되면서 신규 서비스 도입은 한계에 도달했다. 한 시스템에 전국 지자체의 여러 서버가 엮여 있어 복잡한 상황이라 정비가 필요하다. 올 들어 국가기관 전산망에 혼란이 빚어진 일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 3월 법원 전산망 마비와 지난 6월 교육행정정보시스템 나이스의 작동 오류에 이어 벌써 세 번째다. 인터넷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의 명성이 무색할 지경이다.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 장관이 마침 해외에서 디지털 정부를 홍보하는 와중에 이런 사태가 발생해 급거 귀국한 것도 참담한 일이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가 전산망 관리 시스템이 잘 돌아가고 있는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 필요하면 민간 전문 기업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