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재생의료 3년간 600여명만 혜택… ‘첨생법’ 규제완화 개정 탄력

입력 2023-11-20 20:46
줄기세포를 분리할 골수를 골반뼈 부위에서 채취하는 장면. 국민일보DB

분당서울대병원 재생의학센터는 성형을 여러 번 해서 눈과 코가 망가진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 허찬영(성형외과) 센터장은 “그들에게 마땅한 도움을 주지 못해 안타까울 때가 많다”면서 “이처럼 실패했거나 회복되지 않는 미용 성형의 합병증 혹은 암 방사선 치료 후 생긴 만성 창상 등에 자기 몸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주입하는 치료의 효과가 일부 보고되고 있지만, 현행법상 의사 재량으로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줄기세포는 손상된 조직·장기를 되살리는 기능이 있어 ‘재생의료의 꽃’으로 불린다. 국내에서도 줄기세포나 유전자, 조직공학 치료 같은 첨단재생의료를 활성화하고 환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2020년 8월부터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지원법(첨생법)이 시행되고 있다.

그런데 첨생법이 제정·시행된 지 3년이 흘렀지만, 지금까지 600여명에게만 재생의료 혜택이 주어지는 등 환자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향상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현행법이 ‘임상연구’를 재생의료의 유일한 접근 경로로 정하고 그 대상 역시 중증, 희귀·난치질환자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반 의료기관에선 줄기세포 치료(세포 배양 시술)가 꼭 필요한 환자에게 적용하는 길이 막혀 있고 비용을 받을 수도 없다.

이에 국회가 지난 8월 규제를 완화하는 첨생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22일 보건복지위원회 법안 소위를 열어 해당 법안 논의에 들어간다. 복지부도 지난 3월 바이오헬스 규제 혁신 방안을 통해 이런 내용의 정책 방향을 발표한 바 있다. 정부와 국회의 추진 의지 속에 3년 만에 첨생법 개정이 탄력받을지 주목된다.

20일 의료계와 국회, 복지부 등에 따르면 현행 첨생법은 복지부가 지정한 첨단재생의료 실시기관에서 승인받은 임상연구 목적으로만 하도록 정하고 있다. 11월 기준 재생의료 실시기관은 76곳(상급종합병원 39곳, 종합병원 30 곳, 병원 4곳, 의원 3곳)이 지정돼 있으며 임상연구는 32건이 승인됐다. 임상연구는 저·중·고위험으로 나눠 진행되는데, 지금까지 중증, 희귀·난치질환자 약 600명이 연구를 통해 혜택을 받는 것으로 집계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임상연구 목적이다 보니 대상이 적으면 2~3명, 최대 60명 정도여서 보다 많은 환자에게 기회가 돌아가진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8월 첨생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강기윤 의원실 관계자는 “첨단재생의료 임상연구만으로는 연구 자체가 실시되지 않거나, 기존 연구가 종료될 경우 해당 기술을 이용한 치료법이 계속 적용되지 못하는 한계로 인해 환자 수요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해 궁극적으로 환자의 치료받을 권리가 침해받는다는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지금도 지방, 골수 등에서 단순 분리·농축한 줄기세포를 주입하는 행위는 가능하나(이 경우 신의료술로 인정받아야 비급여로 가능, 지금껏 6건만 인정) 더 효과가 좋은 세포 배양 주입술은 허가돼 있지 않다.

강 의원실 관계자는 “이런 첨단재생의료의 접근 제한으로 많은 환자가 대안 치료법을 찾지 못하고 ‘해외 원정 치료’를 떠나면서 경제·신체적 피해를 볼 위험도 있고, 의료비와 부대 비용 등을 포함해 상당한 규모의 국부 유출이 야기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실제 매년 1만~2만명이 무릎관절염이나 암 면역 치료 등 목적의 줄기세포 시술을 받으러 수백, 수천만원을 지불하고 일본행을 택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 미국 대만 등으로 떠나는 인원까지 합치면 연간 5만명 가량이 해외 재생의료를 받으러 빠져나가는 것으로 추산된다. 일본은 2013년부터 관련법을 정비해 줄기세포 치료에 제약이 없고 미국과 대만도 각각 2016년, 2018년부터 재생의료 시술이 가능해졌다.

국회에 발의된 첨생법 개정안은 2조(정의)에서 임상연구의 중대, 희귀·난치질환자 제한 조항을 삭제해 대상을 모든 질환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줄기세포 등의 의학적 시술을 재생의료의 ‘치료’로 정의하는 규정이 신설된다. 의원실 관계자는 “임상연구를 통해 줄기세포 시술의 유효성과 안전성이 입증될 경우 치료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개정의 취지”라고 밝혔다.

대한노인회도 최근 국회 토론회에서 퇴행성 무릎관절염 치료에 줄기세포 시술을 허용할 것을 촉구했다. 희귀·난치성질환 환자단체 또한 첨단재생의료의 대상과 활용 범위 확대를 원하고 있다. 반면 일부 연구자와 시민·보건단체는 규제 완화 시 미용·성형 분야의 우후죽순 시술 증가 등 안전성을 우려해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지정되는 첨단재생의료 실시기관에서만 치료를 허용하도록 하기 때문에 줄기세포 시술이 무분별하게 이뤄지진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법안에는 일정 기간(5년) 안전관리기관이 임상연구와 동일하게 치료의 안전성까지 관리하도록 하고, 이상 반응 등 안전성 이슈가 제기되면 임상연구와는 달리 복지부 장관에게 치료 중지 등의 조치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이 담겼다. 복지부는 이번 국회 회기 내 개정 첨생법 통과를 목표로 잡고 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