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주식 대박’을 꿈꾸는 사회지도층

입력 2023-11-20 04:08

장관, 국회의원, 군장성까지 업무 중 주식거래… 최소한 자리의 무게감은 알아야

요즘 30대 직장인들 모임에서는 ‘금융 투자’가 이야깃거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코인이 다시 많이 올랐다, 2차 전지주가 많이 떨어졌다, 종목은 어떤 게 유망할 것 같나, 얘기를 나누면 1~2시간은 훌쩍 간다. 하루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 대부분 주식과 별 관계없는 본업에 종사하는 직장인들이 투자를 얼마나 알겠나. 퇴근 후 투자 유튜브를 클릭하고, 주워들은 종목을 검색해보고, 그렇게 다음날 점심시간 무렵 주식 계좌를 호기롭게 열어보지만 파란불만 확인하고 조용히 휴대전화를 내려놓는 게 보통의 직장인들 삶이다.

코인이나 2차 전지 광풍 때는 시시각각 변하는 시세에 근무 시간에도 휴대전화를 놓기 어렵다는 얘기마저 나왔다. 아침 9시만 되면 상사 눈을 피해 몰려든 사람들로 회사 화장실 빈칸을 찾기 어렵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회사 화장실에서 흡연구역에서, 짧은 시간 ‘워렌 버핏’ 못지않은 집중력을 발휘하지만 날고 기어봤자 직장인이다. 하루 수십 번씩 화장실을 갈 수도 없고 몰려드는 업무에 계좌창을 열 시간조차 없다. 개미 투자자들에게 애증의 대상인 2차 전지주 광풍 때 한 지인은 “오전에 분명 20% 수익이었는데 업무에 정신이 없어서 퇴근 시간 즈음 보니 마이너스가 돼 있었다”고 한탄했다.

‘월급보다 투자’라는 2030세대 주식 광풍에 혀를 차는 분들도 있지만, 업무에만 전력하지 않고 재테크에도 관심을 쏟는 건 사회적 트렌드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 인사청문회 대상 고위공직자마저도 업무 시간 주식 거래를 심심치 않게 한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으니 말이다.

합동참모본부 의장에 지명된 김명수 후보자는 근무 중 주식 거래를 하면서도 능력을 인정받아 현역 군인 서열 1위 후보에 올랐다는 점에서 직장인 개미 투자자의 귀감이 될 만하다. 김 후보자는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던 지난해 1월 5일, 17일에도 주식과 상장지수펀드(ETF)를 매수했다. 특히 17일은 종일 20여 차례 ETF 2000만원어치를 샀다고 한다. 직장인들로 따지면 회사에 비상이 걸린 날 수십 차례 주식거래를 한 것인데, 초인적인 집중력의 소유자인 게 틀림없다. 초보 개미들은 ETF가 뭔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재테크에도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는 듯하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지난 7일 오후 3시37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에서 주식 관련 카톡 메시지를 주고받은 모습이 언론 카메라에 포착됐다. 직장인들처럼 상사 눈을 피해 화장실에서 보면 된다는 걸 몰랐던 걸까. 해명은 ‘당일 오전 9시45분에 답신한 것으로 예결위 회의 시작(오전 10시) 전 이었다’는 것이다. 일반 직장인들이라면 회의 전 15분은 보고서 한 번 더 확인하기도 빠듯한 시간이다. 이쯤 되면 일반 병사들에게도 근무 중 주식 거래를 허용해 전역 후 생활에 보탬이 되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임병헌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0일 예결위 회의 중인 오전 10시28분 한 증권사 직원에게 카톡으로 잔고 내역을 요청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김남국 무소속 의원은 상임위원회 회의 중 200차례 이상 코인 거래를 했다고 한다. 사법부도 빠지면 섭섭하다. 이미선 헌법재판관은 지난 2019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재직 중 재판관으로 지명됐는데 재산 42억여원 중 35억원이 주식인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이 재판관은 당시 “남편이 거래했다”고 해명했지만, “판사가 부업 아니냐” “워렌 버핏처럼 투자를 하지 왜 헌법재판관이 되려 하느냐”는 비판이 거셌다.

시대가 변했고 더 이상 국민들은 위인전에나 나올 ‘딸깍발이’, ‘한 우물만 파는 대쪽 공무원’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반 직장인들보다 ‘고급 정보’에 접근하기 쉬운 사회지도층이라면 적어도 자리의 무게감은 알아야 한다. 상사 눈치를 보고 화장실로 가는 직장인들처럼, 최소한의 국민 눈치는 봐야 하는 것 아닐까.

나성원 사회부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