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촬영비에 주사비까지… 특활비 통제수단이 없다

입력 2023-11-20 00:04 수정 2023-11-20 00:04
국민일보DB

지난 1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시민단체 소송을 통해 공개된 검찰의 특수활동비 오남용 사례를 정면 겨냥했다. 시민단체 ‘세금도둑잡아라’ 등이 확보한 검찰 특활비 사용 내역에 따르면 광주지검 장흥지청은 검사실 2곳에 설치된 공기청정기 렌털 비용 55만8400원을 특활비로 썼다. 기관장이 바뀔 때마다 찍는 기념촬영 비용도 특활비에서 쓰였다.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 이에 준하는 국정수행 활동에 써야 하는 특활비를 용처에 맞지 않게 지출한 셈이다. 김승원 민주당 의원은 “검찰의 특활비 집행 실태를 보면 휴대폰 요금, 공기청정기 렌트비 외에도 기관장 퇴임·이임 전이나 연말에 뿌린 특활비가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재판 거쳐야 알 수 있는 특활비 내역

5조8397억원. 2013년부터 최근 10년간 정부가 특활비 명목으로 배정한 예산 규모다. 한 해 총 나라살림(약 650조원)의 1%에 달하는 큰돈이지만 정부가 이 돈을 어디에 얼마나 썼는지는 알 수가 없다. 정부 각 기관이 쌈짓돈처럼 활용하고 있는 특활비의 용처는 관련 수사나 재판이 진행되는 경우에만 일부 공개된다. 검찰 특활비 내역이 일부라도 공개된 건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그나마도 소송에 진 검찰이 시민단체에 영수증과 같은 특활비 지출 증빙 자료를 제출하면서 사용처를 지웠는데, 일부 자료가 검찰의 실수로 미처 삭제되지 않아 세상에 드러났다.

일부 검찰 고위 간부들이 퇴직 직전에 거액의 특활비를 몰아쓴 사례도 발견됐다. 2018년 6월 퇴임한 공상훈 전 인천지검장은 퇴임달에 4179만원의 특활비를 썼는데 이 중 91%(3826만4000원)가 퇴임 일주일여 전에 지출됐다. 노승권 전 대구지검장도 지난 2018년 고위 간부 인사가 예정돼 있던 달 3966만원의 특활비를 몰아서 썼다.

검찰이 공개한 집행 내역이 사실상 ‘부분 공개’에 그치고 있다는 점도 도마에 올랐다. 김 의원은 “특활비, 업무추진비, 특정업무경비 증빙용 카드 영수증의 61%는 흐릿하게 복사돼 알아볼 수 없다”며 “대검과 서울중앙지검은 사용시간과 상호까지 가려서 시민단체는 물론 국회조차 지침에 맞게 사용됐는지를 파악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검찰 특활비 사용처를 공개하게 한 재판엔 3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세금도둑잡아라 등은 2019년 윤석열 현 대통령이 검찰총장으로 있던 시절(2017년 1월~2019년 9월)의 검찰 특활비 등에 대해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검찰이 이를 거부하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검찰은 항소와 상고를 거쳤지만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했다. 일반인이 정부의 특활비 내역을 알고 싶으면 이 정도의 노력과 시간이 든다는 얘기다.


대통령 의상비·주사비로 쓰인 특활비

역대 정부에서 특활비를 목적에 맞지 않게 쓴 사례도 수사나 재판을 통해서만 뒤늦게 발견돼 왔다. 노무현정부 청와대에서는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이 “퇴임 후 대통령에게 주려고 했다”며 대통령 특활비 12억5000만원을 횡령해 차명계좌에 보관한 혐의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국정원 특활비 6억원과 10만 달러를 수수한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른바 ‘문고리 3인방’ 안봉근·이재만·정호성 비서관과 함께 남재준 전 국정원장 등으로부터 36억5000만원의 특활비를 상납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청와대로 흘러들어온 특활비는 의상비, 주사비용 등으로 쓰였다. 문재인정부 때도 김정숙 여사의 의상비가 특활비에서 지출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한국납세자연맹은 당시 김 여사의 옷값을 포함한 대통령 부부의 의전비용 등 대통령실의 특활비 집행 내역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다만 정부는 ‘국가안보’ 등을 이유로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강력 통제수단 절실”

검찰은 최근 국회에 특활비 자체 지침을 요약본 형태로 제출했다. 검찰은 지침에서 업무추진비나 기타운영비, 특정업무경비 등 다른 비목으로 집행이 가능한 경비는 특활비로 집행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또 기밀유지 필요성이 낮거나 식사대금 영수증처럼 증빙 자료만으로 집행 사유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을 경우엔 원칙적으로 신용·직불·체크카드를 사용토록 했다. 현금으로 특활비를 미리 집행한 경우 현금 수령자의 영수증이나 집행내용확인서를 첨부해야 한다는 규정도 지침에 포함됐다. 그러나 구체적인 용처는 비공개라 검찰이 지침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확인하긴 여전히 어렵다.

검찰이 지침 원본이 아닌 요약본만 낸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지난 8일 법사위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원회에서 검찰 특활비 자체 지침을 “쓰레기”라며 직격했다. 박 의원은 지침 요약본에 ‘전향적으로 국회에 제출하는 등 특활비를 투명하게 집행·관리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적힌 부분을 언급하며 “어마어마한 비밀사항이라고 이걸 감췄느냐”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2018년부터 ‘특수활동비에 대한 계산증명지침’에 따라 각 부처·기관의 특활비 집행 실태를 점검하면서 특활비 집행 시 영수증과 집행내용확인서를 증거 서류로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예외가 폭넓게 허용돼 이 역시 실효성이 떨어진다. 수사 및 정보수집 활동 등 용처가 밝혀지면 경비집행 목적 달성에 현저히 지장을 받을 경우에는 사유와 금액, 지급 상대방만 간략히 명시하면 증빙 예외가 될 수 있다. 현재 특활비를 배정받는 기관 상당수는 이런 예외 규정을 원칙처럼 인식하고 있다. 특활비 내역에 대한 감시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특활비 사용을 두고 강력한 통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19일 “국민 세금으로 마련되는 특활비를 제대로 검증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각 기관이 어디에 얼마나 특활비를 쓰고 있는지, 내부 지침은 제대로 준수하고 있는지 국민들이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박세환 이의재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