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는 3만5000명이 넘는 탈북민들이 살고 있다. 우리는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어 자유를 찾아 대한민국에 온 그들을 ‘먼저 온 통일’이라 부른다. 그러나 남한에서 그들의 삶은 녹록지 않다. 같은 민족인데도 탈북민이라는 꼬리표와 편견, 차별에 부딪혀 우리 사회의 ‘경계인’으로 겉돌고 있다.
극동방송(이사장 김장환 목사)은 정전 70주년을 맞아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며 탈북민들과 북방선교, 남북통일을 위해 헌신하는 관계자들을 초청해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가을 음악회를 열었다. 지난 16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개최된 음악회에는 북녘 고향을 그리워하며 향수를 달래기 위한 이들로 붐볐다.
김장환 목사는 “올해 가을 음악회는 반세기 분단의 아픔을 가진 한반도 신앙과 인간의 존엄, 진정한 자유를 위해 북한을 탈출한 우리의 동포들을 위로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나누며 음악으로 보듬어 주는 자리”라며 “음악회를 통해 이 땅의 평화는 물론 지금 전쟁으로 신음하고 있는 모든 곳에 하늘의 평화가 속히 오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음악으로 하나 된 남북
극동방송 임지현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된 가을 음악회는 남과 북의 음악으로 작은 통일을 이뤘다. KBS 관현악단장 박상현 지휘자가 이끄는 모스틀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춰 배우 박영규가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부르며 음악회의 서막을 열었다. 탈북민 윤설미 아코디어니스트가 남한에도 잘 알려진 북한 인기 가요 ‘반갑습네다’ ‘임진강’ ‘휘파람’ 곡을 연주하자 관객들은 손뼉을 치며 함께 박자를 맞췄다.
소프라노 김순영,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 테너 김현수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3인의 성악가는 탈북민들의 기도를 담은 찬양곡 ‘내 영혼이 그윽히 깊은데서’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험한 십자가 능력 있네’를 불러 감동을 선사했다.
탈북민 천재 음악가들 ‘한자리에’
이번 음악회에는 북한에서 연주 활동을 했던 탈북민 음악가들도 참여했다. 평양음악무용대학 피아노 교수를 역임한 황상혁 피아니스트는 ‘통일 아리랑’을 연주해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정요한 바이올리니스트는 평양에서 태어나 북한의 음악 영재로 발탁돼 김정일의 지원을 받으며 북한을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로 주목받았다. 러시아 차이코프스키음악원을 졸업하고 평양국립교향악단의 솔리스트 겸 악장을 역임했다. 그는 이날 아내이자 북한에서 촉망받던 김예나 피아니스트와 함께 ‘사라사테 지고이네르바이젠 Op. 20’곡을 협연했다.
정씨는 “동유럽 교환교수로 재직할 당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주님을 영접한 뒤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하고자 대한민국으로 건너왔다. 남북통일은 도적같이 찾아올 것”이라며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저 기도해야 한다. 기도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공연했다”고 밝혔다.
특별히 탈북민 여성 35명으로 구성된 물망초합창단(지휘자 박창석)은 찬양곡 ‘주 날 인도하시네’를 부르며 여기까지 인도하신 주님의 손길에 감사했다. 탈북청년 오명경씨는 가족의 그리움을 담아 꾹꾹 눌러쓴 편지를 읽었다.
“사랑하는 언니 오빠, 나의 귀여운 조카들 잘 지내고 있어? 항상 사랑이 넘치고 웃음이 가득했던 우리 집이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지 매우 궁금해. 이곳에선 행복할 때도 슬플 때도 함께 나눌 가족이 없어 더 힘든 것 같아. 나는 하루빨리 통일돼 사랑하는 가족을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하고 있어.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아프지 말고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 사랑해.”
이어서 등장한 목포 어린이 합창단은 국악 장단에 맞춰 통일 아리랑 곡을 부르며 전래동화 견우와 직녀 이야기를 통해 분단된 남과 북이 성령으로 하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끝으로 전 출연진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통일을 기대하며 ‘그리운 금강산’곡을 불렀다.
미래 북한 복음화 위한 사역자 탈북민
1974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24년을 북한에서 살다가 1998년 10월,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북한 박광일 아름다운꿈의교회 목사는 “남과 북이 함께 음악이라는 선율 안에서 하나님을 찬양했다는 사실이 너무 감격스럽다”며 “한국교회가 우리 북한 이탈 주민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로 뜨겁게 품어주고 기도해 주며 미래 북한 복음화를 위한 평신도 사역자로 준비시키는 일에 더 동참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극동방송 한기붕 사장은 “극동방송은 지난 67년간 대한민국 국민은 물론 북방지역에 사는 동포들의 벗이요 동반자였다. 신앙의 자유, 진정한 자유를 찾아 북한을 탈출한 우리 탈북민이 오늘 음악회를 통해 위로받고, 낯선 한국 땅에서 정착하면서 겪은 여러 가지 어려움과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이 됐길 바란다”고 전했다.
극동방송 가을 음악회는 2014년 ‘찬송과 가곡의 밤’을 시작으로 매년 다음세대 육성을 위한 장학금 마련과 소외계층을 위한 사랑 나눔 음악회로 진행되고 있다. 이번 음악회를 통해 모아진 수익금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탈북민, 소외계층, 선교사 가정, 한 부모 가정 그리고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의 자녀들을 돕는 장학금으로 전액 사용될 예정이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