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서 북한이 사라졌다. 북한이 몇 달이 넘도록 미사일 발사 등 군사행동을 하지 않고 있다. 9월 말 한·미가 동해에서 연합해상훈련을 하고 10월에 미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가 부산항에 입항했는데도 무력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지난달 22일엔 한반도 인근 상공에서 미국 전략폭격기 B52까지 참가한 사상 첫 한·미·일 3국 공중훈련이 이뤄졌지만 별다른 군사적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지난주엔 미 국방장관이 방한해 한·미 안보협의회(SCM)를 개최했지만, 이를 군사행동의 빌미로 삼지 않았다. 말로는 위협을 이어가지만 미사일을 쏴대며 건건이 무력으로 맞대응하던 때와는 달라진 모습이다.
10월까지 발사하겠다던 군사정찰 위성을 생각하면 조만간 북한이 주요 뉴스에 등장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인공위성 발사를 준비하느라 두 달여 동안 조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대 노동력이 필요한 추수와 맥경기(麥耕期)가 겹치는 농번기라 군사적 행동을 자제했을지 모른다. 12월에 동계훈련이 시작되면 도발이 재개될 수 있겠지만 미사일 발사는 그다지 노동력과 상관이 없어 보인다.
얼마간 눈에 보이는 군사행동은 없었지만 북한이 변한 것은 없어 보인다. 여전히 핵무력 강화 이유를 미국과 남한에 돌리며 군사행동의 명분을 마련하고 물러설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군사적 행동을 명백한 군사적 도발로 규정하고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군사적 대응을 우선시하고 있다. 미국 역시 북한의 핵무력 강화를 속임수로 치부하고 한·미·일 군사협력 및 유엔사 재활성화의 명분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사건건 무력시위로 대응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미사일을 쏴대며 핵무력을 과시한다고 미국이 대화에 나오거나 양보를 할 가능성은 없다. 내부 결속 차원에서 보더라도 오히려 북한 주민의 불안감이 커질 수 있다. 핵무력 강화라는 군사적 목적이 아니라 정치적 의도의 군사행동이 주는 필요성에 의문을 가질 가능성도 있다. 오히려 얼마 전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 고체연료엔진을 시험했다고 보도한 것처럼 조용히 핵무력을 고도화해 나가고 있을지 모른다.
북한의 핵 능력은 빠르게 발전해 왔다. 2017년 핵무력 완성을 선포한 뒤에도 핵무력 강화를 멈추지 않고 있다. 지금도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는 영변 원자로는 가동 중이다. 어디선가 원심분리기를 돌려 우라늄을 농축해 핵탄두 수는 증가하고 있다. 핵탄두를 옮길 다양한 유형의 새로운 미사일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북한은 미 본토 타격뿐만 아니라 한반도까지도 핵을 사용할 수 있는 범위에 포함시켰다. 조용한 가운데 핵의 위험과 공포는 점차 커지고 있다.
지난 얼마간 군사행동을 보이지 않은 북한이 뉴스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관심과 우선 순위에서 멀어졌다. 비핵화, 평화라는 단어도 함께 사라지고 동맹, 한·미·일, 유엔사 등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군사적 준비와 노력이 무의미하다거나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재진영화된 국제질서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일 군사협력과 유엔사 강화를 바탕으로 한 대북 압박이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동맹과 힘에만 의존한 평화는 오히려 한반도를 군사적 긴장 고조 및 위기와 함께 군비경쟁과 안보 딜레마에 빠지게 할 수 있다.
북한의 군사행동은 언제든 다시 시작될 수 있다. 뉴스에서 북한이 사라졌다고 우리의 삶 속에 뿌리박힌 분단의 위협과 공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지불식간 무력 충돌의 위험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 미래는 한 치 앞을 예상하기 어렵다. 하루하루가 폭풍전야와 같은 나날들인지 모른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군사안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