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사익편취 관련 총수 고발지침 개정안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하면서 입지가 좁아지게 됐다. 충분히 여론을 수렴하지 않은 채 개정을 추진하다 개정 자체가 무산될 상황에 처했는데, 사전에 대통령실에 보고하지 않은 것까지 문제가 됐다.
공정위는 지난달 19일 공정거래법상 사익편취 행위로 사업자(법인)를 고발할 때 총수나 친족 등 특수관계인도 원칙적으로 함께 고발하도록 하는 고발지침 개정안을 마련했다. 사익편취는 대기업이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해 총수 일가에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는 행위다. 현행 규정은 총수 일가가 사익편취에 관여했다는 게 명백히 입증돼야 총수 일가를 고발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법인 외에 총수 일가에 대한 고발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공정위는 태광그룹 사익편취 사건 등 최근 판례를 반영해 개정안을 마련했다. 사익 편취로 궁극적 이득을 보는 게 총수 일가인 만큼 이들의 직접 개입이 증명되지 않더라도 고발이 이뤄질 수 있게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개정안 발표 후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대한상공회의소·한국무역협회·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한국상장회사협의회 등 6개 경제단체는 “고발지침 고발 사유와 기준이 모호하고 상위법과도 충돌한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행정예고 기간 중이었던 공정위는 결국 개정안 재검토 의사를 밝혔다.
여론의 반발에 사실상 정책을 철회한 것이다. 더욱이 이번 개정 지침은 사전에 대통령실에 보고되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이 탓에 대통령실에서 공정위 입지가 더욱 좁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대통령실 주도로 진행하던 온라인플랫폼 법 제정 마저 동력을 잃은 분위기다. 정부 관계자는 “정책을 발표하고 다시 회수하는 게 말이 되냐”며 “공정위가 ‘헛발질’을 한 것”이라고 했다.
세종=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