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례본 용자례 낯선 지문… 준킬러문항도 늘려 까다롭게 설계

입력 2023-11-17 00:02 수정 2023-11-17 00:59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1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여고에서 한 수험생이 두 손을 모은 채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선 정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예고한 대로 킬러문항은 없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EBS 강사진과 입시 전문가들은 16일 시험 직후 공교육 내에서 최대한 까다롭게 문항을 설계했다는 평가를 내놨다. 킬러문항보다 약간 쉬운 ‘준킬러문항’을 더 배치하고, 지문은 쉽지만 선지를 까다롭게 내는 식이다. 내용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지 않은 수험생은 시간을 많이 쓰거나, 오답을 택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이런 출제 당국의 전략이 통해 올해 수능은 변별력을 갖췄다는 평가가 많다.

국어 “지난해보다 많이 어려워”

입시 전문가들은 올해 수능 국어의 표준점수 최고점(원점수 만점)을 140점대 중후반대로 예상했다. 표준점수 최고점은 시험이 어려울수록 높아진다. 1등급 커트라인은 지난해 수능과 비교해 10점가량 하락한 80점대에 형성될 것으로 예측됐다.

공통과목인 독서에선 ‘데이터에서 결측치와 이상치의 처리 방법’을 소재로 한 과학기술 지문에 딸린 10번 문항이 변별력 있는 문제로 꼽혔다. ‘노자’에 대한 학자들의 해석을 다룬 인문 지문에 포함된 독서 15번도 고난도 문항으로 평가된다.

남윤곤 메가스터디교육 입시전략연구소장은 “두 대상(왕안석과 오징의 입장)을 보기의 내용에 적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문 자체가 낯선 훈민정음(해례본) 용자례에 대한 글을 출제한 35∼36번도 까다로웠다는 평가다.


수학 “최상위권 변별력 확보”

지난해 수능 수학은 표준점수 최고점이 145점으로 까다로웠다. 올해 9월 모의평가에서도 144점으로 까다로운 기조를 유지했다. 이번 수능 수학은 이러한 출제 기조 속에서 최상위권 변별력에도 신경을 쓴 것으로 보인다. 입시 전문가들은 기본개념 이해와 적용, 추론 능력을 요구하는 문항이 출제돼 변별력을 높였다고 분석했다. 특히 단답형인 22번, 30번이 최상위권을 가를 수 있는 문제로 지목됐다.

수학 1등급 커트라인은 과목에 따라 82~93점으로 추정됐다. 이과 수험생이 문과 상위권 대학에 지원하는 이른바 ‘문과 침공’ 현상은 다소 완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수능에서 수학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컸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평가원은 두 영역 격차를 좁히겠다고 예고했다. 올해 수능 국어가 지난해 수능은 물론 9월 모의평가보다 어려웠다는 분석이 많아 두 영역 간 격차는 실제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다만 수학에서 선택과목에 따른 점수 차이는 문·이과 통합형 수능의 구조적인 문제여서 ‘이과 강세’가 계속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영어 “어려웠던 9월 모평 비슷”

절대평가인 영어 영역은 매우 어려웠던 9월 모의평가와 비슷한 수준으로 출제된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수능 영어 1등급 비율은 7.83%(3만 4830명)였던 반면 9월 모의평가에서는 1등급 비율이 4.37%로, 상대평가 1등급(4%)과 같은 수준이었다.

올해 영어는 킬러문항 요소로 지적됐던 추상적인 지문은 빠졌지만 지문 전체를 충실하게 읽어야 정확한 답을 골라낼 수 있는 문제가 많았다. 김병진 이투스 교육평가연구소장은 “답을 찾는 과정에서 생각을 요하거나 ‘매력적 오답’을 포함한 문제들이 많아서 문제풀이가 까다로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변별력 있는 문항으로는 33~34번, 39번 등이 지목됐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박상은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