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모(28)씨는 최근 외국계 식품기업을 퇴사하고 3개월째 집에서 놀고 있다. 한국 기업문화를 그대로 답습한 사내 조직문화, ‘짜디짠’ 연봉에 실망감을 느낀 게 퇴사의 이유다. 박씨는 당분간 실업급여로 버티며 대기업 취업 문을 두드릴 계획이다. 그는 “쉬면서도 불안해 토익 문제집은 꾸준히 푸는 중”이라고 했다.
박씨처럼 ‘쉬는 중’인 청년들이 다시 늘고 있다. 중대한 질병이나 장애 없이도 특별한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청년 ‘니트족’은 올해 들어 월평균 41만명대를 기록하고 있다. 청년 인구가 감소하는 가운데 그냥 ‘쉬는’ 청년마저 늘자 정부도 이들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1조원가량을 투입하는 지원대책을 내놨다.
15일 통계청이 발표한 10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15세 이상 취업자는 2876만4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34만6000명 늘었다. 그러나 청년층(15∼29세) 취업자 수는 8만2000명 감소했다. 청년층 인구 감소 영향이다. 이런 가운데 15~29세 전체 청년 중 특별한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쉬었음’ 청년은 4.9%로 41만4000명이다. 이들이 쉬었음을 택한 이유는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움’(33%) 혹은 ‘다음 일을 준비하기 위해’(24%) 때문이다.
정부가 이날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재한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청년층 노동시장 유입 촉진방안’을 내놓은 것도 상황이 심각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민간·정부·공공기관에서 일할 기회를 7만4000명에게 확대 제공하는 한편 취업한 청년을 상대로 44억원을 투입해 초기 직장 적응을 돕는 ‘온보딩 프로그램’ 등을 신설키로 했다.
다만 이 같은 대책이 일자리 미스매칭 등 구조적 원인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 나온다. 통계청의 2023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청년들의 직장 선호도 1위는 대기업(27.4%)으로 공기업(18.2%), 국가기관(16.2%)을 제쳤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임금 격차도 여전하다. 기재부 관계자는 “미스매칭 관련은 전체 청년고용 대책의 핵심이라 이번 대책에서는 그런 것까지는 다 담기는 어려웠다”고 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니트족은 구조적 문제라 일자리 정책으로만 풀지 못한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며 “유럽의 ‘유스개런티’처럼 일자리·주거·금융·심리치료 등을 종합적으로 아우르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종=김혜지 기자 heyj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