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임금제 고심하는 정부… 폐지 땐 자칫 임금분쟁 우려

입력 2023-11-15 04:03

노사정 대화 채널이 복구되면서 포괄임금제 오남용을 막는 실질적 대안이 마련될지 주목된다. 노동계는 ‘공짜 야근’과 장시간 근로 원인으로 지목된 포괄임금제 전면 폐지 목소리가 높지만 정부는 위법 행위 감독에 행정 역량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기업마다 다양한 형태로 포괄임금 계약을 활용하는 상황에서 일률적 입법 규제는 자칫 임금 분쟁으로 이어지는 등 산업 현장에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14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노동부는 올해 최초로 실시한 포괄임금 오·남용 기획 감독을 하반기는 물론 내년에도 지속해서 이어갈 계획이다. 고용부가 올해 1~8월 포괄임금 불법 오·남용이 의심되는 사업장 87곳을 들여다본 결과 연장근로 한도를 위반한 곳은 52곳(59.8%)이었다. 근태 기록을 허위로 작성하고 연장근로 한도 초과분의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사례가 다수 적발됐다.

포괄임금 계약은 연장·야간·휴일수당 등을 기본급이나 고정수당에 포함해서 지급하는 방식이다. 법으로 정한 제도가 아니라 판례를 통해 관행적으로 퍼져나간 것이다. 노동계는 근로감독 중심 대책만으로 현장에 만연한 위법행위를 근절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포괄임금 계약은 사용자보다 힘이 약한 근로자에게 유리할 수 없는 만큼, 계약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이러한 요구가 커지면서 국회에는 총 4건의 포괄임금 계약 금지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하지만 정부는 기업과 근로자의 상황이 다양한 만큼 법적 규제 대신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합리적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고용부가 지난 13일 공개한 근로시간 개편 대국민 설문조사를 보면 ‘연장근로에 대해 포괄임금으로 지급한다’는 응답은 근로자 48.3%, 사업주 58.8%였다. 연장근로를 포괄임금으로 보상하는 노사 중 ‘약정 근로시간이 실근로시간보다 적다’는 응답은 근로자 19.7%, 사업주 19.1%로 나타났다. ‘실근로시간이 더 많다’는 응답은 근로자 14.5%, 사업주 9.1%였다. 포괄임금으로 임금을 적게 받는 근로자와 임금을 더 받는 근로자가 혼재해 있는 것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노·노, 노·사 간에도 이해관계가 다양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대기업이나 노조 힘이 센 사업장은 포괄임금 체제에서 받던 수당을 기본급에 포함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업장은 오히려 근로자 임금이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 IT업계에선 포괄임금제를 폐지했다가 2년 만에 노사 합의로 되돌린 사례도 나왔다. 팀별 초과근로 사전신청 과정에서 일부 팀이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하는 등 형평성과 도덕적 해이 등의 문제가 불거진 탓이다.

권오성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는 국민일보에 “가장 큰 문제는 근로자들이 자신의 시간급이 얼마인지 모르는 것”이라며 “포괄임금 폐지는 포괄계약으로 받는 임금을 기본급으로 포함해달라는 주장과 다름없는데 이에 대한 즉각적인 해결 방안은 없다. 근로감독 강화 등을 시작으로 하나씩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세종=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