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 KBS 사장이 취임 하루 만에 ‘대국민 사과’에 나서며 고개 숙였다. 취임 첫날 임직원에 대한 대규모 인사를 단행한 데 이어 앞선 인사청문회 때부터 강조해 온 ‘신뢰 회복을 위한 뼈를 깎는 자구안’도 들고 나왔다. 언론노조 등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새로운 사장 취임과 동시에 KBS가 변화의 소용돌이에 던져진 모양새다.
취임에 반발하는 언론노조 KBS 본부의 피켓 시위를 뚫고 들어온 박 사장은 어두운 얼굴로 단상에 섰다. 박 사장의 기자회견에 앞서 언론노조 KBS 본부는 KBS아트홀 입구에서 피켓 시위를 하며 “진행자 교체와 프로그램 폐지 등 방송 독립파괴를 규탄한다”며 “박 사장은 사과할 게 아니라 사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사장은 14일 서울 영등포구 KBS아트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임원들과 함께 허리를 숙여 사과한 뒤 “저는 오늘 공영방송의 주인인 국민 여러분께 그동안 KBS가 잘못한 점을 사과드리고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겠다는 각오를 다지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공영방송으로서 KBS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공정성, 정확성, 균형성이란 가치에 충실한 보도를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무분별한 속보 경쟁과 익명 보도 자제, 팩트체크 활성화, 오보 발생 시 즉각적 사과 등의 방침을 세웠다는 설명이다.
박 사장은 고 장자연씨 사망 관련 윤지오씨 보도(2019)-검언유착 보도(2020)-오세훈 시장 생태탕 의혹 보도(2021)-김만배 녹취록 보도(2022)를 꼽으며 KBS의 신뢰를 잃게 한 상징적 보도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외에도 반성할 보도는 많다”며 “그런 부분에서 철저히 조사해 이후 보도에서 비슷한 오보나 불공정, 편파방송이 없도록 KBS의 보도 지침을 삼겠다”고 말했다.
KBS의 방만경영 개선을 위한 방침도 언급했다. 박 사장 본인과 임원 임금의 30%를 경영이 정상화될 때까지 반납하겠다고 했다. 또 명예퇴직 확대 실시를 통한 인력구조 개선을 꾀하겠다는 생각도 밝혔는데, 여의치 않으면 구조조정도 검토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박 사장 취임과 동시에 이뤄진 대규모 인사 및 프로그램 편성 변경과 관련해 그가 관여했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하지만 박 사장은 “저는 본부장급 인사 외에는 관여하지 않았고 국·실장, 부장 등의 인사는 각 본부장의 판단에 따라 이뤄졌다. 프로그램 개폐에도 관여하지 않았고, 해서도 안 된다”고 답했다. 전날 KBS 노조가 문제 제기한 ‘더 라이브’의 편성 변경과 ‘주진우 라이브’의 진행자 주진우씨의 하차 등은 자신과는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KBS는 경영 위기와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대한 위기에 놓인 데 이어 내홍까지 겪게 됐다. 박 사장은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과 정파성 논란, 청탁금지법 위반 의혹 등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KBS의 경영을 정상화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