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도우며 때론 다퉜지만… 함께 걷는 그것이 은혜였다

입력 2023-11-15 03:05
유진소 부산호산나교회 목사와 유미은 사모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잠시 찍은 그림자 사진. 유 목사 제공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국적 문화 언어가 다른 전 세계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길을 걷고 있다는 한 가지 이유로 ‘브엔 카미노!’라는 인사 하나면 곧바로 특별한 연대감을 느꼈다. 혼자가 아니라 같이 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서 오는 위로와 격려가 강하게 느껴졌다.

이런 면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 가운데 가장 안 돼 보이는 사람이 홀로 걷는 사람들이다. 순례의 특성상 혼자 걸으며 주님과 교제하는 것이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순례길에서는 그렇지 않다. 혼자 외롭게 걷는 것이 가장 안쓰러워 보였다. 어떤 경우에는 불쌍해 보일 정도였다. 이런 역설이 존재하는 이유는 아마 순례길이 우리 삶과 신앙의 축소판이어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일까. 이번 순례길을 걸으며 우리 부부는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부부가 함께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여러 상황이 받쳐주지 않고는, 우리 고백대로 한다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같이 대화하면서 걸을 수 있는 것도 좋지만 실제 필요한 순간에 서로 도울 수 있다는 게 큰 도움이 되었다. 하다못해 길을 걷다가 화장실을 다녀올 때도 한 사람은 짐을 봐주고 한 사람은 다녀올 수 있으니 보통 도움이 아니었다. 숙소인 알베르게에서 낯선 사람들과 잠을 자야 하는 불편 없이 2인실을 얻어 편하게 쉴 수 있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둘이 같이 걷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함께 걷기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들이 분명 있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혼자 오겠는가. 우리 부부는 거의 40년 가까이 함께 살아온 사이임에도 그 힘들고 피곤한 길을 걸으면서 정말 사소한 문제로 예민해지고 갈등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예를 들면 매일 숙소에 들어가면 양말을 빨아야 하고 다음 날 잘 걷기 위해 발 마사지도 해야 한다. 또 매일 짐을 싸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상대를 배려하지 못한 사소한 말과 행동들로 서로 화를 내는 유치하고 부끄러운 모습들을 보였다.

유 목사 내외가 폰페라다 가는 길 아침, 간이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 유 목사 제공

하지만 이보다 더 우리를 힘들게 만들고 갈등하게 했던 것은 서로를 향해 쏟아놓는 불평과 원망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내는 불평하고 나는 그것에 분노했다. 왜냐하면 내가 이번 순례 일정을 미리 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보지 않은 코스나 일정을 정하다 보니 실제로는 별로 좋지 않을 수도 있고 때로 조금 잘못 갈 수도 있는데 아내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고 그때마다 나는 감정이 폭발하면서 삐지곤 했다. 우습게도 순례길을 걸으며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를 통과한 모세에 대해 많이 공감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모세가 들으면 웃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순례 길을 걷다 보면 우리의 민낯을 드러내게 된다. 특히 함께 걸으면 여전히 미숙한 우리의 실체와 우리 안의 상처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에 우리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 우리 부부가 이렇게 갈등하고 힘들어할 때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만지셨다. 매일 말씀 묵상을 통해 그런 은총을 주셨고 순례 길 곳곳에 있는 이런저런 표지나 사인으로 말씀하시고 인도하셨다.

비아프랑카 지역 성당의 '프에르타 데 페르돈'(용서의 문) 모습. 유 목사 제공

한번은 서로 좀 심하게 날 선 말을 주고받고 상처를 주고받았는데 그때 지나가던 지역이 ‘비아프랑카’였다. 우리나라 방송에서 ‘스페인 하숙’을 찍었던 그 동네였다. 그런데 그 지역에 들어가는 초입에 성당이 하나 있는데 그 입구에 ‘프에르타 데 페르돈(용서의 문)’이라는 문이 있었다. 몸이 아프거나 다른 사정 때문에 산티아고까지 순례를 다 못해도 여기 이 문만 통과하면 다 용서하고 순례를 한 것으로 인정해준다는 문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 내용과 상관없이 주님의 메시지로 들려 왔다. 서로 용서하라는 말씀이었다. 그래서 화해하는 일들이 있었다. 겉으로 계면쩍으니까 ‘용서해줄게’ 그렇게 말하면서 말이다.

더 우스꽝스러웠던 것은 순례 중에 손자의 두 돌 생일이 다가와 손자가 좋아하는 ‘뽀롱뽀롱 뽀로로’ 노래를 동영상으로 찍어 보내기로 했는데 그 노래가 생각보다 어려워 걸으면서 계속 연습을 했다. 노래 가사엔 ‘때로는 다투고 때로는 토라져도 언제나 돕고 언제나 이해하는 우리들은 친구죠 사이 좋은 친구죠’라는 부분이 있었다. 신기하게 이 노랫말은 아내와 서로 다툰 날이면 어김없이 마음속에서 들려왔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웃으면서 뽀로로 노래는 손자가 아니라 우리 부부를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산티아고 순례길. 그 길이 아름다운 것은 혼자 걷지 않고 함께 걷기 때문이다. 함께 걷는 것,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 연약함과 상함이 자꾸 부딪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다. 우리 삶을 인도하시고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의 그 구체적인 은혜를 말이다. 함께 걸을 수 있게 하시는 은혜, 그렇게 함께 걸으며 행복하게 하시는 은혜이다.

유진소 부산 호산나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