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조명환 (7) 한결같은 사랑 주신 에드나 어머니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입력 2023-11-15 03:06
조명환 회장이 1995년 미국 네브래스카주 세인트폴에 있는 에드나 어머니의 집을 40년 만에 방문해 어머니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조 회장 제공

나는 교수가 될 때까지 나를 후원해준 에드나 어머니를 직접 만나 보고 싶었다. 미국 유학 중에 한번 찾아뵙고 싶었으나 극구 올 필요 없다고 해서 가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내가 건국대 교수가 되고 에드나 어머니가 98세가 되던 1995년 여름, 이러다가 어머니를 생전에 볼 수 없을 것 같아 실례를 무릅쓰고 무작정 찾아 나섰다.

나는 미국 네브래스카주 세인트폴에 있는 에드나 어머니 집 앞에서 차를 세우고 한참 눈물을 흘렸다. 벅찬 가슴을 겨우 추스른 뒤 현관문을 두드렸다. 에드나 어머니와 함께 살던 동생 릴리안이 문을 열었다.

릴리안에게 한국에서 온 아들 명환이라고 했더니 깜짝 놀라며 나를 거실 소파로 안내했다. 릴리안은 2층에 에드나 어머니가 있다며 모셔오겠다고 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금방이라도 달려 내려올 것 같던 어머니는 한참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1시간쯤 지났을 땐 혹시 어머니가 나를 만나고 싶지 않으신 걸까 의심이 될 정도였다.

마침내 2시간이 지나서야 어머니는 모습을 드러냈다. 어머니는 누구보다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으로 2층 난간에 서 있었다. 샤워하고 머리를 빗고 예쁘게 화장을 하고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귀걸이와 목걸이를 하고 빨간 구두를 신고, 하얀 바지에 빨간 윗도리를 입느라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한국에서 온 아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였다.

어머니와 나는 서로 마주 안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지난 40년을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를 안아 주었던 어머니를 이제는 내가 꼭 안고 있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너무 감사했어요.”

어머니는 두 손으로 내 볼을 만지며 나를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얼굴엔 주름이 많았지만 그 눈은 작은 우주가 들어앉은 듯 너무나 맑고 투명했다. 예수님의 눈이 꼭 이렇겠다 싶었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한참을 매만졌다. 지난 세월 나를 위해 기도하던 손, 매달 정성스레 내게 편지를 쓰던 손, 사랑의 기적을 만든 손. 내게 어머니의 손은 거룩한 주님의 편지였다.

나는 어머니를 만나면 꼭 묻고 싶은 질문이 있었다. “어머니는 어떻게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연고도 없는 저를 그토록 오랫동안 변함없이 사랑하셨나요?” 어머니는 에베소서 2장 8절을 말씀하시면서 “내가 주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너에게 준 사랑은 아직 너무 부족하다”고 하셨다.

나는 에드나 어머니가 상당한 부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에드나 어머니는 나보다 더 가난했다. 마지막 직업은 동네 편의점 점원이었다. 나는 여권이 없는 미국 사람은 처음 보았다. 그녀는 가난한 시골에 사는 아주 평범한 여인이었다.

여유가 있어야만 남을 돕는 것이 아니었다. 에드나의 사랑은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한 것이었다. 그녀는 남을 돕기 위해 부자가 되기까지 기다리지 않고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가진 것을 정성껏 내놓았을 뿐이었다. 자신도 가난했지만 자신보다 더 어려운 한국의 어린이를 기꺼이 도운 것이다.

정리=박용미 기자 m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