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은(가명·25)씨는 지난 4월 아이를 출산한 뒤 ‘베이비박스’를 찾았다. 아이 친부와는 임신 4~5개월쯤 연락이 끊겼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김씨는 당장 아이를 키울 순 없겠다는 생각에 교회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맡겼다. “꼭 데리러 올 테니 입양은 보내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정수진(42)씨도 12년 전 양육 포기를 고려했다. 정씨는 ‘책임질 수 없다’며 사라진 친부 외에 누구에게도 임신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혼자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번 돈으로 병원에 다니며 아이를 낳았고, 결국 입양기관에 아이를 보냈다.
하지만 두 엄마는 잠깐이나마 품에 안았던 아이를 잊지 못했다. 김씨와 정씨 모두 아이를 되찾아와 양육하기를 선택했다. 김씨는 12일 “막상 출산하고 보니 위탁시설에 보내려던 생각이 사라졌다. 힘들어도 제가 키워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날 밤 바로 데리러 갔다”고 말했다. 정씨는 “아기를 일주일 정도 데리고 있었던 기억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설마 아기를 굶겨 죽이기야 하겠느냐는 생각 하나로 무작정 데려왔다”고 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지난 1일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등이 참여하는 보호출산제 심포지엄을 열었다. 익명 출산을 가능케 하는 보호출산제는 지난달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내년 7월 시행된다. 미혼모 사이에서도 보호출산제는 산모와 아이 생명 보호에 필요한 제도라는 긍정적 평가, 오히려 아동 유기를 방조하고 ‘고아 호적’을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공존한다.
비슷한 고민을 한 미혼모 김씨와 정씨도 보호출산제를 보는 시각은 엇갈렸다. 김씨는 “출생신고가 꺼려져 병원을 찾지 않고 위험하게 출산하는 일은 막아야 한다”며 “막상 아이를 낳아 얼굴을 보면 양육을 선택할 용기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보호출산제가 없으면 출산 전 낙태하는 분들도 더 있을 것”이라며 “출산 후 마음이 변할 수도 있으니 우선 출산을 할 수 있게 돕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정씨는 보호출산제에 대해 “잠깐의 두려움을 이겨내면 아이를 선택할 수 있는 엄마에게 ‘양육 포기’라는 선택지를 국가가 주는 셈”이라며 “부모가 오히려 숨고 아이를 포기하도록 종용한다”고 지적했다. 정씨는 “한 명의 생명이라도 살리는 것 또한 중요하지만 살려놓고 어떻게 관리할지는 논의가 없다”고 했다.
미혼모 사이에선 보호출산제 시행에 앞서 위기 임산부와 미혼모 지원 등 입법 공백 해소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미혼모가족협회에 따르면 미혼모가 양육을 선택할 때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한 건 경제적 어려움(29.7%)이다.
김씨와 정씨도 경제적 지원, 상담 등이 필수적이라는 데 입을 모았다. 김씨는 “아이를 처음 키울 땐 당장 아이 기저귀와 분유값은 계속 늘어나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1년 반 동안은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고 했다. 정씨는 “국가가 양육의 무서움,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게 ‘남편이 없으니 우리가 도와줄게’ 하며 손잡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보호출산제로 태어난 아동의 장래 문제도 풀어야 할 과제다. 김영주 한국여변 한부모가정법률지원특위 부위원장은 “저조한 국내 입양률, 보호종료 아동 문제, 보호출산제로 태어난 아이의 알권리 등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며 “완비되지 않은 채 제도를 시행한다는 건 결국 보호출산이 ‘생명 유지’ 정도 보호만 하고 궁극적 보호는 손 놓겠다는 선언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는 미혼모가 보호출산제에 기대지 않고 직접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씨는 “국가에서 ‘어린이집 보내줄게’ ‘교육받고 싶으면 대학교에 다녀봐. 내가 아이 돌봄 지원해줄게’ 이렇게 하면 어떤 엄마가 아이를 포기하겠느냐”고 말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